함광복 논설위원 hamlit@kado.net

 "에이, 전쟁은 무슨…." 그렇게 말하던 사람도 요즘은 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떡하겠느냐?'는 재미성 설문조사도 있었다. '도망간다'가 1위였고, 대구참사 때 그 전동차에 탔었는지 안탔는지 결정적 단서가 됐던 핸드폰 통화를 생각한 듯 '집으로 연락한다'가 2위였다. 아, 어쩌면 9위를 차지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도 그 참사를 생각한 답변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만일에 그랬을 경우'를 가정한 질문일 테니까, 답변도 '아님 말고'식으로 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기운이 너무 흉흉한데, 이 위험한 반도의 당사자들의 전쟁관은 너무 낭만적이다. 외국투자가들이 긴장하고 기업인들이 방한취소를 하더라도, 그리고 외신들이 '한국인들은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조롱조 기사를 쓰더라도 그건 겁 많은 당신들의 잣대로 잰 판단일 뿐이다.
 여전히 오늘 아침 최대관심사는 검찰 인사항명에 따른 대통령과 검사들의 주말대화가 어쟀었다거나, 이중국적 아들을 둔 장관을 임명한 노무현정부의 인선 스크린을 두고, "털어서 먼지 안 날 놈은 나뿐이 없구나"식의 장탄식 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에 일제히 손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우리 민족은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낙관주의자들이었을까. 아니면 하도 놀라고 부대끼고 닳고 잘려나가 오감이 무뎌져 버린 것일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사람은 딱 한 사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들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전쟁은 어디까지나 남침이다. 따라서 남침의사가 없는 한 전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했던 워턴터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가 쓴 '부시는 전쟁 중(Bush at War)'이란 신간 소개를 어느 신문 조각에서 읽다가 그만 치를 떨고 말았다. '부시는 바보'라는데 멍청하기는 정말 나란 생각 때문이었다. 밥은 부시의 육성을 빌어 김정일에 대한 그의 심리상태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김정일을 증오합니다. 이 자에 대해서는 내장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적 반발심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 백성들을 굶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 범죄수용소에 대한 첩보내용을 읽어봤소. 엄청난 규모요. 이 큰 시설들을 이용해 가족을 갈라놓고 사람들을 고문합니다.(중략)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글쎄요. 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자유를 믿든가, 그래서 자유롭게 인간답게 살든가, 아니면 그렇지 않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거지요."
 부시의 그 말은 한반도 전쟁은 지금까지 한국사람들이 생각해 왔던 것처럼 반드시 남침에 의해 발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재깍재깍 한반도의 전쟁 시계는 일찌감치 돌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오감이 무뎌진 우리가 지금 뒤늦게 그 시계소리를 듣기 시작했으나 또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은 안 된다"는 반전 충고를 한 쪽에서는 '반미'로 일괄 취급해 버리고 있고, 이 상황을 촉발한 북핵 반대는 조건 없이 '전쟁획책'으로 몰리고 있다. 그 사이 전쟁과 평화의 키는 우리 손을 떠나 너무 멀리 가버렸다. 엊그제 함경북도 어령기지에서 발진한 북 MIG기들이 RC-135 미 정찰기를 15m까지 달라붙어 그림자 위협비행을 한 게 그 예이다.
 북한은 '사태는 곧 협상'이라는 고도의 정치 술수를 노렸겠지만, 그건 과거 미국이 북한을 대하던 방법이고, 부시는 '사태는 곧 공격'으로 해석했을지 모를 아찔한 북한의 곡해였다.
 낙관주의란 본시 현실은 언제나 보다 좋은 이상적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한반도 현실은 그럴 가능성의 시계가 매우 불량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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