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숙   전 춘천여성민우회 공동대표
▲ 박미숙
전 춘천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위내시경검사를 받으러 지인이 일하는 병원을 찾았다.여러 해 검진을 미루던 터라 내심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병원 규모는 작지만 아는 의사가 직접 검진하는 곳을 선택했다.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그는 고집스러울 만큼 자기원칙에 강하고,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가 밝았다.의사 가운을 입고 문진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며 진료하는 손길은 차분했다.
내시경검사를 그렇게 수월하게 끝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의사와 간호사의 정성스런 역할수행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간호사는 검사방법을 알기 쉽게 설명했고,길고 검은 내시경관이 목구멍을 힘겹게 넘어갈 때 간호사는 환자의 어깨를 연신 주무르며 긴장감을 풀어냈다.
병원 문을 나설 때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상쾌했다.별다른 이상 소견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검진과정을 숙지하여 의료진이 이끄는 대로 순조롭게 해냈다는 만족과 환자의 동선을 색색의 테이프로 바닥에 붙여둔 병원의 배려나 환자를 응대하는 의료인의 말끝에도 따듯한 기운이 전해졌다.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자에 대한 존중이었다.그것은 최상의 의료시스템이나 스펙 좋은 의사라고 해낼 수 있는 요건은 아닌 것 같다.
소도시 작은 병원에 좋은 의료인들이 있다는 것은 미담이고,삶이 더 절실한 근방의 노인들에게 그 병원과 의사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그런 반면 심심찮게 기사가 되는 사건들도 있다.마취상태 환자나 해부실험용 시신을 놓고 인증샷을 찍는 한심한 의료인들의 악행이다.이익에 눈이 먼 병원들의 무리한 경영이나 불법 운영이 의료윤리를 상실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 테다.
둘러보면 빛과 어둠 같은 양면의 세상은 도처에 산재한다.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일자리를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갈 때 시식사원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우수 기업이 있고,수익보다 소비자의 건강을 우선 고려한 제품을 출시하는 양심 기업도 있다.반면 아르바이트 직원의 임금을 체불하고,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보상을 미루고,유독물질이 함유된 살균제로 산모와 아이들을 숨지게 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성업하는 것도 현실이다.부덕한 기업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자산 규모가 적잖은 것도 한 이유이고,반복되는 기업들의 악행이 제때 제대로 징벌되지 않는 법의 무력함도 한 이유지만,피해는 고스란히 감내하면서도 대응엔 미약했던 소비자의 주권도 큰 탓이 아닐까.
시대마다 정의를 지켜온 인물들이 있었다.국가 폭력에 맞서 시민 불복종을 실천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그랬고,외세에 맞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한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다.그들은 한 사람으로 시작했지만 추종자들은 고행을 함께 했고,자발적 수행으로 뒤따랐다.우리 시대에도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병들게 하고,생존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있다.그들이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그들 제품을 불매하는 방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구조와 1인가구의 급증으로 고립되고 방치되는 이웃들을 건강하게 지켜낼 방법들을 고민한다.일본은 1인가구가 30%를 넘으면서 무연사가 급증했다.NHK의 특별취재팀은 2010년 신년 특집으로 무연사(고독사)를 조명했다.무연사 현장을 찾아가고 그들의 삶을 밀도 있게 담았다.뒤이어 출간한 르포 형식의 책 서문에서 한 기자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취재했다고 밝혔다.따듯한 마음이었다.그 뒤로 일본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작가와 감독들이 가족이나 직장,지역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따듯하고 면밀한 시선을 자주 목도할 수 있었다.우연일까.우리도 고통을 살피고 기록하는 따듯한 관찰자들이 많아지고,악행을 감시하는 차가운 눈과 실천도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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