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 건너 오솔길 따라
겨울·봄 두 계절 온몸 만끽
고려때 건축 일주문은 없어
사천왕상도 없는 이색 사찰

▲ 춘천 청평사
▲ 춘천 청평사
절기가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를 지난 경칩(驚蟄)을 향해가고 있다.매서운 꽃샘추위가 남아 있지만 소리 없이 여기저기서 돋고 있는 봄 기운에 겨우내 움츠렸던 몸은 근질거린다.어깨를 펴고 슬슬 문밖으로 나가보자.봄이 성큼 다가와 있다. 욕심을 부려 산행에 나서고 싶지만 산속은 아직 겨울이다.얼어있던 몸에 무리가 가서 목,팔,다리,허리가 삐끗하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부담 없이 몸을 풀 수 있는 곳이 있을까.산자락에 붙어있는 산사(山寺)가 정답일 듯 하다.산사 중에서도 유난히 봄과 궁합이 잘맞는 곳이 있다.봄이 오는 도시인 춘천(春川)에 자리잡고 있는 청평사다.
청평사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소양호가 연상된다.봄의 문턱에서 만나는 소양호는 이미 얼었던 몸을 녹이고,푸른 빛깔을 되찾았다.차갑기보다는 시원한 모습이다.물결위로 잘게 부서지는 햇살에서는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청평사 가는 길이 주는 재미 중 하나가 소양호 뱃길이다.걸음을 반복하다보면 자칫 단조로울 수 있지만 청평사에 들어가기 위해선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물을 건너야해 지루할 틈이 없다.이로 인해 ‘섬 속의 절’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오봉산이 엄연히 존재하는 ‘육지 속 절’이다.높이 779m로 제법 덩치가 있는 오봉산은 예전 청평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선착장에서 내려 청평사까지 가는 오솔길에는 겨울과 봄 두계절이 공존한다.완전히 녹지 않은 채 길가에 쌓인 눈이 눈에 띄지만 귓가로 계곡에서 녹아 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새싹 구경은 아직 이르지만 골짜기를 흔들었던 칼바람은 잠잠해졌다.오솔길 길이는 1㎞ 가량이고 오르막도 심하지 않아 들숨과 날숨이 고르다.등산화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닥도 잘 닦여있다. 청평사가 품고 있는 이야기도 재미있다.서기 1089년 관직을 버리고 청평사에 숨은 이자현(1061~1125년)이 사다리꼴로 석축을 쌓은 뒤 개울물을 끌어 인공연못을 만들었다.날씨가 맑으면 오봉산의 그림자가 비췄다고 해 영지(影池)로 불렸던 이 인공연못은 현존하는 고려정원 중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청평사는 고려시대 세워졌지만 일주문이 없다.여느 사찰에 있는 사천왕상이 없다는 점도 이색적이다.계단을 오를 때 네모난 대문들이 겹쳐 보여 오묘한 느낌을 준다. 멀리서 바라본 청평사는 아늑한 인상을 풍긴다.오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노승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처럼 기품있고 단아하기도 하다.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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