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헌   강원경찰청장
▲ 최종헌
강원경찰청장
상습 괴롭힘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2011년 12월,학우들의 끊임없는 구타와 갈취,심지어 물고문까지 당했던 소년의 아픔이 유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며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이를 계기로 경찰,교육부 등 정부부처들이 학교폭력을 ‘반드시 근절’해야 할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며 손을 맞잡았고,심각한 학교폭력 실체를 마주하게 된 지역사회도 ‘온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발 벗고 나서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모두의 절박함과 진심이 통했기 때문일까! 분명한 성과가 수치를 통해 나타났다.강원도만 봐도 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생이 한때 11%까지 치솟았으나 지금은 0.8%로 크게 감소했다고 하니 그동안 우리의 노력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최근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우리가 이런 가시적 성과에 매몰돼 ‘학교폭력은 근절되고 있다’고 안주(安住)하는 것이 아직은 이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때리고,돈을 빼앗는 등 물리적 폭력은 감소한 반면,친구를 모욕하고 따돌리는 ‘정서적 폭력’은 꾸준히 늘고 있어 아이들은 여전히 상처받고 있다.경찰도 이런 정서적 폭력에 대한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안타깝게도 ‘학교폭력 근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듯싶다.
어린 시절 간혹 친구와 싸우고 들어갈 때면 아버지는 친구의 허물은 덮어주고 오히려 내 잘못을 탓하시며 회초리를 들었다.억울해서 울고 있는 나를 따뜻한 말로 달래주시던 어머니는 친구 집으로 데려가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머리 숙여 사과하셨다.또한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조그만 양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친구들 앞에서 칭찬해 주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남아있다.체계적인 법률이나 거창한 대책은 없었지만 과거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며 우리의 가치관도 변한 것일까?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리며 내 아이가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쫓긴 많은 부모들이 예전처럼 ‘사람의 됨됨이’를 먼저 가르치려는 여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렇게 성적지상주의에 내몰린 아이들은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괴롭히는 것에 크게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다.
아이들이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것을 아는 것보다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그래야만 5년 전 절망에 빠져 서럽게 우는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학교폭력 근절’을 외쳤던 우리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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