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큰 인물이 나는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기실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결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그것이 좋은 배경이든 나쁜 배경이든 사람이 성장·발전하는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좋은 토양이 나무를 곧고 바르게 크게 하지만,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란 나무에도 특별한 것이 느껴진다.
결국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과 어떻게 결부되느냐가 관건이다.이런 점에서 보면 대체적으로 환경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데도 어폐가 없지 않다.논두렁정기라는 것도 사실은 실존적 환경에서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 된다고 하겠다.같은 환경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자극이 되지만,다른 어떤 이에게는 절망이 된다.각자가 처한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하다.
몇 해 전 중앙 관가에서 ‘배추밭 전설’이란 얘기가 돌았다.고위 관료들이 배추밭에 다녀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 해서 나온 말이다.경제 관료들이 현장에 다녀온 뒤 장관에 낙점되면서 징크스 같은 게 생긴 것이다.2013년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이 대관령 배추밭을 다녀간 뒤 장관이 됐다.2015년엔 주형환 1차관의 대관령 방문 계획이 취소되자 이번엔 장관이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호사가들의 입에서 시작된 전설 같은 얘기지만 장관후보군의 인사철 행보가 그만큼 민감한 주시의 대상이 됐다.지난 19일부터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고 있는 2017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이 강원도 배추밭이 화제에 올랐다.대회 초반부터 강원도 선수들이 메달레이스를 주도 내년 평창올림픽의 전망을 밝게 한다.정선 출신의 이상호(한체대)는 스노보드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선사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 선수는 초교 1년 때 부친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변변한 훈련장 없이 사북의 고랭지 배추밭에서 뒹굴며 스키를 익혔다고 한다.언론은 ‘배추밭 소년’이라는 닉네임으로 그의 성공스토리를 전한다.엊그제는 강릉 출신의 심석희(한체대)가 쇼트트랙 2관왕에 오르며 강원 낭자의 매운 맛을 보여줬다.거친 바닷바람과 논두렁밭두렁 정기를 다 받고 자란 이들이 평창올림픽 성공의 보증수표가 될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