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내 고향은 봄이 유난히 늦게 왔다.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마음에는 영영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3월 개학 날,바람을 안고 가는 등굣길 시린 바람은 눈물을 쏙 빼놓을 만했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춥지 않은 척 어깨 쭉 펴고 씩씩하게 걸었다.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내 유년은 마을이 수몰되면서 사라졌지만 동네 개구쟁이들과 사방팔방 뛰놀던 추억이 생생하다.3월이 되면 그 어느 곳보다 먼저 학교가 시끌벅적해진다.학교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은 방학에도 학교 담벼락 아래 모여 뜀박질하며 놀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차가운 바람 끝에도 개울가 버들강아지가 보들보들 살이 오르고 기어코 봄은 왔다.당골,고일,배소구미,한터에서 책보 둘러메고 오는 동무들 어깨에 얹혀 봄은 그렇게 왔다.텅 비어 있던 학교운동장이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겨울은 서북쪽에 버티고 선 봉화산 너머로 저만큼 멀어져 갔다.
지난주 강원도 모든 학교도 개학을 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온 것이다.우리 아이들도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꿈을 꾸겠지.나도 그랬다.묵은 달력을 뜯어 책을 싸고 하얀 겉장에 보기 좋게 과목명과 ‘민병희’ 이름 석 자를 쓰면서 올해엔 ‘공부 열심히 해야지’하고 마음먹곤 했다.
강원교육 구성원도 올 한해 새로운 결심을 했다.늘 그랬지만 평등하고 정의로운 교육을 위해 교육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려고 한다.초등학교 1,2학년 담임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해 ‘한글책임교육’을 강조했다.선생님들께 친절한 가르침을 실천해 달라고 당부드린다.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아이들 글 읽는 소리라 하지 않았는가.꼬맹이들이 글자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글을 읽는 모습,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나도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날 때면 재미난 그림책을 읽어줄 생각이다.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멋진 할아버지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유학년제를 전면 시행하고 초등학교에서 자리 잡고 있는 평가방법을 중학교까지 확대할 생각이다.‘배움성장평가제’를 통해 친구가 아닌 어제의 자신과 경쟁하는 성장을 중시하는 새로운 학력관을 세우고자 한다.아울러,고등학교에서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멈추고 학생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는 ‘숨요일’ 운영을 제안하고 있다.일주일에 한 번은 ‘쉼과 우정’을 주제로 한 학생들의 창의적인 활동과 좋은 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학습동아리가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봄 뜰 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새 온 세상을 유록의 빛으로 가득 채우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배움도 나날이 자랄 것이다.
아침 출근길,소양강 다리를 넘어가는 바람이 차다.봄인 듯싶다가도 두세 번 꽃샘추위가 있게 마련.일찍 머리를 내민 새싹들 잔뜩 움츠릴 수밖에 없겠다 싶었는데 오후가 되니 따스한 봄날이다.자갈돌 구르는 듯한 동무들의 재잘거림이 그립다!
이번 주말에는 밭에 나가봐야겠다.올해는 예년보다 봄꽃이 일찍 핀다고 하는데 감자는 언제 놓아야 할까.길을 나선 김에 냉이라도 한 움큼 캤으면 좋겠다.향긋한 봄 냄새,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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