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헌법이 뚜벅뚜벅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난 2개월여 동안 헌법은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 내며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 나왔다. 기자의 책상에는 A4 용지 19쪽 분량의 서류가 놓여 있다. 지난해 7월20일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출력한 대한민국 헌법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헌법개정 요구가 한창 높아지던 시점에 기자와 만났다. 가끔 찾던 헌법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 요구가 거세지면서 수시로 읽게 됐다. 마침내 지난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헌법기관인 대통령을 헌법의 이름으로 파면하기에 이르렀다.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탄핵이다.
1987년 10월29일 전부 개정을 통해 이듬해 2월25일 시행에 들어간 우리 헌법은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을 거부하며 거리와 광장에서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친 민주화 투쟁의 결실이다. 1987년 4월 전두환은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을 골자로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시민사회의 비난성명이 쇄도했다. 5월18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그해 1월 경찰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은폐됐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민의 분노는 폭발했다. 5월 재야세력과 야당은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켜 6월10일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6월26일에는 전국 34개 도시에서 130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평화대행진을 벌였다. 결국 전두환은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약속하는 ‘6·29선언’을 발표하며 백기 투항했다.
헌법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취임에 즈음해 다음과 같이 선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바로 헌법 준수와 헌법 수호를 통한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제1의 대통령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헌법 정신인 대의 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를 훼손했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대통령을 파면하며 이같이 선고했다. “피청구인(박근혜)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2017년 촛불시위는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진화다. 헌법 정신을 훼손하고 헌법 질서를 위배한 대통령을 헌법의 이름으로 단죄함으로써 헌법적 가치의 막중함과 생명력을 천명했다. 이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탄핵정국에서 드러난 촛불과 태극기의 크나 큰 간극을 극복하는 일이다. 서로 다른 방식의 나라 사랑에 대한 이해와 화해 그리고 관용이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의 전제다. 지난 30년동안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담아내고 탄핵정국에서 드러난 제왕적 대통령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일도 시급하다. 분권형 개헌과 수도권 일극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며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지방 분권형 개헌이 거론되는 이유다. 12일 아침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을 지나 헌법재판소를 돌아 청와대에 이르는 길은 전장의 상흔이 여전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일상을 시작하고 정부서울청사에는 평창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대형 현수막이 설치되고 있었다. 역사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내일을 향해 도도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남궁창성 서울본부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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