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예현   한국여성수련원장
▲ 전예현
한국여성수련원장
“강원도에서 살고 싶냐고?난 아닌데.”
얼마 전 친구에게 고향 여행을 제안했다 거절당했다.강원도에 가면 더 긴장하고 피곤해서라고 한다.필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어른들의 배려가 왜 피곤하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의문은 문화적 경험차이를 알고 난 후 풀렸다.
필자는 대가족 문화에서 자랐다.조부모님과 한집에서 살았다.명절에 친척이 모이면 100명이 넘었다.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휴일,명절,방학에 수시로 고향을 찾았다.가끔은 직장 동료들과 강원도 여행을 다녔고,한밤중에 토종닭을 들고 찾아온 친척 분들의 ‘폭풍 질문’을 받으며 늦은 저녁을 먹은 적도 있다.그래서인지 중장년층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다.
반면 그 친구는 10대에 강원도를 떠났다.가족들도 흩어져 대도시에서 자주 이사를 하며 살았다.형제 자매간에도 전화를 하지 않고는 갑자기 서로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그만큼 독립적이고 사생활을 중시한다.그런 그가 한동안 귀향을 검토하며 강원도를 다시 찾았다가 충격을 받았다.미혼인 그에게 “나이가 찼는데 왜 결혼을 안하냐”며 쏟아지는 어른들의 질문은 사생활 간섭으로 느껴졌다.본인을 제외하면 70대 어르신이 막내인 친인척 모임에서 온갖 심부름까지 하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이런 문화적 충격을 몇 번 겪자 그는 강원도 귀향을 검토하다 포기했다.
당시 중장년 어른들의 이런 언행이 사생활을 침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이 세대에서는 서로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이웃 사촌간의 정으로 통한다.상대방 가족의 취업,건강,경조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주 묻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나이가 한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연장자의 심부름을 하는 것도 이들에게 이상하지 않다. 다만 앞서 언급한 필자와 친구의 차이처럼,이런 장년층 문화에 대한 젊은층 반응에는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다.
예를 들면 필자의 한 지인은 ‘젓가락질 사건’ 이후 지역 모임에 발길을 끊었다.나이 차이가 30살 이상 나는 대선배들도 참석하는 자리가 어려웠지만,그는 소통하며 배우고 싶어 심부름을 자청하며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그러다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가정교육과 연관시켜 지적을 받은 날 그는 회원에서 탈퇴했다.대선배들은 충고라고 설명했지만,나이가 더 어리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그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이와 대조되는 사례도 있다.지역의 한 원로는 “귀요미”라는 말을 듣고 충격 받았다가,대학생 조카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각종 게임을 접하고 캐릭터 상품에 익숙하며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20대와 30대가 누군가에게 “귀엽다”라고 하는 것은 칭찬이다.편하게 말이 잘 통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울 것 같다는 호감의 표시이다.이런 문화 차이를 알고 난 후 그는 조카와 ‘페친’(페이스북 친구)가 됐다.조카는 그를 ‘멋쟁이 할배’라고 주변에 자랑한다.
최근 동북지방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1월 1일 기준 강원도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율은 16.9%이다.또 양양,영월,횡성,고성,평창,정선,홍천,삼척은 이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이다.즉 중장년층의 가치가 앞으로 강원도의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이런 가운데 위의 여러 사례는 강원도가 청년에게 매력적이려면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지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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