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행   월정사 부주지
▲ 원행
월정사 부주지
지난 정유년 3월 10일 오전 11시,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헌정사상 초유의 일대사건입니다.그날 당연히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헌재로 쏠렸고 ‘대통령 파면’이라는 주문이 낭독되자 한 측에서는 환호가,또 한 측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지요.헌재의 결정이 민심을 한데 모으는 종착역이 아니라 더 깊은 분열을 예고하는 출발점이 된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입니다.
소승이 묵고 있는 이곳 산사도 그동안 탄핵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조용한 오대산 산사에 어인 탄핵이냐고 갸우뚱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산사를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참배객,내방객들이 “스님은 인용입니까,기각입니까” 혹은 “어떻게 결론이 나야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며 묻곤 했던 것이지요.또 촛불집회에서 한 스님이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며 분신을 했습니다.태극기 집회에는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이 등장했습니다.물론 일부 극단적인 종교인들이라 생각합니다만,상황이 이러하니 자연스레 ‘종교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종교인에 대해 월등히 높은 윤리와 책임의식을 요구합니다.그 까닭은 종교인의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비행기를 운항하는 기장에게 비싼 월급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요즘은 자동항법장치의 개발로 비행기 스스로 날아갑니다만 굳이 조종사가 필요한 이유는 만에 하나 발생할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종교인의 역할이 이와 같다면 비약일까요.종교는 폭주하는 자동차에 치인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는 역할보다는 그 자동차의 핸들을 빼앗아 올바른 운전자의 손에 쥐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희생적 정열로써 어리석은 사람을 미망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어느 쪽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오랜 수행을 거쳤다 해도 종교인 자신은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입니다.그러나 종교는,종교인은 자신을 불태움으로써 어두운 세상을 밝히며 사라지는 이율배반적인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까지 온 것에는 이러한 ‘종교인의 역할’이 너무 미약했던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어떤 이들은 탄허스님,법정스님,성철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문익환목사 같은 종교계의 큰 어른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었겠느냐고 아쉬워합니다.소승 스스로도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써 착잡하고 죄스러운 마음입니다.하지만 앞으로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탄핵이 결정됐으니 이제 시국은 대선으로 빨려 들어갈 것입니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불을 붙인 건 불교 한용운스님,천도교 손병희선생님,기독교인들이 하나로 뭉쳐 이 땅의 모든 백성을 한 가족으로 보고 정의로써 공통의 교리를 삼았기 때문입니다.이처럼 종파를 떠나 국가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의 고통과 절망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종교 본연의 역할을 되찾아야할 것입니다.새벽 예불참회 기도 후 월정사 탑돌이를 봉행하면서 종교인으로서 시대의 목탁이나 소금과 청량제가 되었더라면 자문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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