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에 담긴 봄이 나른하게 취한다.봄을 ‘한 잔의 기쁨’이라고 표현한 시인 때문에….‘초봄에는/가만히 앉았어도 왠지 눈물겹다/봄풀이 돋아나도 그렇고/강물이 풀려도 그렇다/말없이 서러운 것들/제가끔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이 길목의 하루는/반가움에 온몸이 젖어/덩실덩실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다/바람같이 언덕을 달리고 싶다/…/초봄에는/가만히 앉았어도 왠지 눈물겹다/한 잔의 기쁨 위에/또 한 잔의 슬픔처럼’.이수익 시인이 노래한 봄이다.‘한 잔의 기쁨 위에’.
그러나 이 봄, 끝까지 취할 순 없다.술잔을 거두고 봄의 길목을 지켜야 한다.꽃 향기에 온 몸을 맡겨야 한다. 香遠益淸(향원익청)! ‘향기는 멀리 풍기며 빛깔이 맑은’ 봄이어야 하지 않겠나.한 겨울의 광장을 달군 촛불이 이 봄의 꽃봉오리를 밀어올린다.이름도 예쁜 장미 대선!50여 일 남짓한 이 기간에 우리는 모든 잡것과 낡음,부패,부조리를 걷어내야 한다.부정한 것들이 선거를 더럽히지 않도록.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정호승시인은 ‘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삭이듯 일러준다.‘꽃씨 속에 숨어있는/꽃을 보려면/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잎을 보려면/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꽃씨 속에 숨어있는/어머니를 만나려면/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꽃씨 속에 숨어있는/꽃을 보려면/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는 것에 머물지 말고, 마음 속에 남은 증오와 분노를 버려야 꽃을 볼 수 있다는 가르침!
김용택시인은 봄이 그냥 지나감을 한탄한다.‘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그 꽃산 철조망 두른 채/꽃피었다가/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새 봄이 그냥 가고 있어요’라고.‘장미대선’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적폐청산에 대한 다짐도 없이,진흙탕 싸움으로 끝난다면 차라리 봄을 묶어두는 수 밖에.다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촛불을 켜는 수 밖에.5월의 ‘장미 대선’은 이수익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반가움에 온몸이 젖어, 덩실덩실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바람같이 언덕을 달리고 싶은’ 그런 날이어야 한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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