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근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
▲ 이성근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
1989년 로드니 브룩스 MIT 교수는 ‘DSpace@MIT’라는 대학 저널에 ‘걸어 다니는 로봇’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그의 주된 관심사는 보행하는 로봇에 관한 아키텍처를 만드는 것이었다.약 30년이 지난 지금,그가 제안한 대로 로봇은 걸어 다니는 것을 넘어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하였다.이제 기술은 로봇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로봇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며 그 경우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3차 산업혁명이든 4차 산업혁명이든 결국 기술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는 인간이란 누구이며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주도하지만 이제 기술의 발전을 인간이 완화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기술의 발전으로 사라진 일자리는 결국 그 기술을 만드는 일자리로 바뀔 것으로 예측했지만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극단적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새로이 생기는 일자리의 수는 산술급수적으로 생겨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이미 사람들은 산업혁명을 통해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학습을 한 바 있으며,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산업혁명이 인간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는가를 지적했다.약 30년 만에 걸어 다니는 로봇의 개념을 넘어 스스로 학습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어낸 인간은 또다시 T.S.엘리엇의 ‘황무지’를 다시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줄어드는 직업과 새로이 만들어지는 직업의 불균형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황무지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미래의 황무지는 노동의 불균형에서 야기된다.인간과 로봇의 영역구분,줄어든 노동과 그 가치에 대한 인간 간의 갈등과 조정,그러면서도 기술의 효율성이 가져다 준 풍요로운 생산물의 분배와 사용은 이미 앞에 와 있는 미래의 모습들이다.기술과 노동은 동전의 양면이다.기술은 노동의 양을 줄이지만 협상만 잘하면 여유로운 미래를 줄 것이다.그러나 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이를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노동의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날 것이다.단순 노동만을 경쟁우위로 삼는 개인과 개인 간의 갈등,선진국과 개발도상 국가와의 갈등은 기본이 될 것이고 국가는 이러한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 해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그것이 기술 변화 때문에 리더십과 교육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줄 것이다.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미래를 맞을 수 없다.우리의 부모들이 우리를 신인류라고 인정했고,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신인류라고 부르면서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기술이 주는 다음 세상에 적합한 방식을 교육이 만들어야 하고,리더십은 교육이 그것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주어야 한다.기술이 주는 다음의 세상을 두려움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소프트 파워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그 기술의 수준과 결과에 주목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는지 모른다.기술의 내용이 무엇이고 어떠한가는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갈 것이다.대신 그것이 몰고 올 거대한 구조변화와 그로 인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그것이 우리가 대응해야할 위협인 것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