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5바퀴 넘는 21만㎞ 누비며 평창 유치지원 행보
이건희 회장, 사면복권 후 IOC 환심사기 종횡 무진
둘째사위 김재열 부위원장 최순실 사태로 입신 제동
이는 올림픽에 대한 애착과 집념이 그만큼 강했한 측면도 있었지만 올림픽 유치가 그만큼 절박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평창조직위원회 김기홍 기획사무차장은 “유치전에서 삼성의 역할이 대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IOC위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밝히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을 것”이라고 밝혔다.실제 노회한 IOC위원들의 마음을 사는 것은 유치당사국의 정성이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그동안 IOC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도 따지고 보면 IOC 내부가 외부인에게 철저하게 가려진 복잡한 내부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됐다.김운용 전IOC위원이 강원도나 평창유치위를 보고 “(IOC에 대해)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종종 핀잔을 주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은 더반 총회를 두 달 앞두고 2011년5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 테크니컬 브리핑에서 기자들과 만나 “만날 사람은 다 만났다”고 말했다.사실상의 승리선언과 같은 메시지였다.이 회장은 IOC위원 한 명을 만나기 위해 모든 일정을 비워두고 기다릴 정도였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일부 위원은 저녁약속을 펑크내기도 했으나 이 회장이 기다리겠다고 설득,1시간 30분 넘게 기다려 만나기도 했다는 것이다.해당 IOC 위원과의 식사에는 항상 당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냅킨까지 준비하도록 하는 등 삼성다운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강로 평창 조직위 위원장 보좌역은 “당시 접촉한 10명의 IOC위원들과의 면담에서 빠지지 않고 나온 이야기는 이건희 삼성회장 겸 IOC위원의 평창유치관련 활동이었다”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건희 회장의 최 적극적인 평창유치지원 행보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놀랍다는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고 기억했다.이어 “ IOC위원들 사이에서는 이건희 재평가여론이 팽배했다”고 밝혔다(윤강로의 스포츠세상).
이 회장의 올림픽 유치전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둘째사위 김재열 평창조직위 부위원장이다.김 부위원장이 올림픽유치전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1년2월 IOC의 평창 현지실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이 회장은 평창 보광휘닉스파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후보지 조사평가단을 맞았다.이 자리에는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딸인 이서현 제일기획 부사장,이 부사장의 남편이자 당시 제일모직 부사장이었던 김재열 평창조직위 부위원장이 함께 했다.이들은 보광피닉스파크 호텔에서 평가단을 영접했고 스노보드 경기장 등 현장 프레젠테이션도 참관했다.김 부위원장은 이 회장이 주재한 IOC 평가단 오찬에도 배석했다.김 부위원장은 곧이어 3월에 개최된 영국 스포트 어코드에 이 회장과 나란히 참석,주목받았다.더반에서 평창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직후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부축한 것도 김 부위원장이었다.김 부위원장은 이건희 회장이올림픽 유치 직후인 20011년8월28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초청,오찬행사를 가졌을 당시 이 회장을 대신해 환영사도 했다.이에 대해 이 회장의 IOC위원 임기가 오는 2022년까지인 점을 감안,후임을 염두에 둔 장기 포석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김 부위원장의 승승장구는 2016년6월 평창조직위국제부위원장에 임명될 때까지 계속됐다.당시 조직위는 부위원장을 사무차장으로 사실상 내려앉히고 국제부위워장을 신설,김 부위원장을 임명했다.내부적으로는김 부위원장을 모셨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사태가 발목을 잡았다.김 부위원장은 2016년12월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출석했다.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김 부위원장을 향해 “평창조직위가 상근부위원장직을 없애고 사무처장직을 신설한 뒤에 두 달 있다가 다시 부위원장직이 신설됐다.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리를 계속 차지하려고 했는지 안타깝다. 올림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권을 노리는 국정농단 세력과 결탁해서 결국은 자신의 영역을 계속 관철하려고 한 정황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김재열 증인의 과오가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평창올림픽 유치전의 또다른 수혜자인 김 부위원장의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송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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