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계 후손이 창건한 교토의‘청수사’ 대명당 정혈
10만대군 이끈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
적 정벌 공로 청수사 왕실 원당 승격
사카노우에 묘소도 근동 주혈 대명당
필자가 청수사를 찾은 것은 그 유명한 ‘청수의 무대(舞台)’ 전설때문만은 아니었다.백제 도래인 후손인 사카노우에가 이 절을 창건했다는 역사적 연고와 어떤 명당에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풍수적 호기심도 작동했다.협소한 공간에 본당을 앉히고 그 앞의 가파른 벼랑에 391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무대(舞台)를 설치하여 산속의 아름다움과 교토 시내를 한 눈에 전망할 수 있는 ‘청수의 무대’라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명당은 넓고 안정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파른 지형에 자리하고 있는 청수사는 교토 최고의 양택 대명당이다.
청수사의 창건 이야기와 사카노우에에 대하여 살펴보자.
일본 헤이안 시대의 설화집인 에 실린 이야기다. 사카노우에 다무라마로(坂上 田村麻呂, 758~811년)는 청수사 아랫마을에 살고 있었다. 출산한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자 산후조리에 좋다는 사슴을 사냥하여 귀가중이었다. 산중에서 들리는 청아한 소리바 끌려 가보니, 폭포 아래에 엔친(延鎭)이란 스님이 독경 중이었다. 엔친은 이곳에 절을 세우려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사카노우에는 살생을 범한 죄를 참회하기 위하여 엔친과 힘을 합하여 2년만에 청수사를 세웠다. 그 덕에 부인의 건강도 좋아지자 사카노우에 부부는 절에 관세음상을 바쳤다. 이 불상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자 많은 참배객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청수사를 보고나니 사카노우에의 묘소가 궁금해졌다. 백제계 후손이며 자랑스런 우리의 선조를 찾아나섰다.교토역에서 다이고지(醍寺)행 버스를 타고 동쪽방향으로 25분쯤 가서,야마시나(山科)구의 오오시이신사 정류장(大石神社前)에서 하차하여,대로를 따라 10분 걸으면 오른 쪽에 사카우에 공원이 있고 사카노우에의 묘소가 공원 안에 있다.사카노우에 묘소에는 정이대장군 판상전촌마려공묘(征夷大將軍 坂上田村麻呂公墓) 라는 비석이 선명하다.백호방 먼 곳에서 출발한 맥로가 거의 직선으로 행도, 진입하여 정확히 결혈하였다.근동의 주혈인 대명당이다.묘역은 메이지 20년(1887), 헤이안 천도 천백년을 맞이하며 정리한 것이다.이국 땅에 묻히신지 1200년이 지났지만 가까운 내 조상같고 일본이 남의 땅이 아닌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