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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해악'

거대어, 전략어, 탱크어들

2003년 03월 17일 월요일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하는' 링컨이 젊은 시절 하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이야기다. 합동 정견 발표회에서 라이벌 후보가 링컨이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며 비난한 뒤 청중을 향해 "여러분, 천당에 가고 싶은 분들은 손들어 보세요."라고 소리치자 모두 손을 들었으나 링컨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라이벌 후보는 "링컨 씨, 당신은 손을 들지 않았는데, 그럼 지옥으로 가겠다는 거요?" 하고 물었다. 링컨 후보가 웃으며 대답했다."천만에요. 나는 지금 천당도, 지옥도 아니라 국회의사당으로 가고 싶소!" 그러자 청중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런 링컨이 자기 연설 차례가 됐을 때 외쳤다. "나의 상대 후보는 피뢰침까지 달린 호화 저택에 살고 있습니다만, 나는 벼락을 무서워할 정도로 많은 죄를 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조크가 또 한번 청중을 웃겼고, 주지하듯 링컨은 당선됐다.
 이번엔 '바보 노무현'과 비슷한 '바보 헬무트 콜' 독일 전 총리 이야기다. 한 때 독일에선 콜 총리를 안주 삼은 '콜 농담'이 유행했다. 끝 없이 이어지던 그 시리즈 중 몇 편이 한국에도 전해져 우리를 웃겼다.
 콜 총리의 부인 하네로레 여사가 열쇠를 꽂아 놓은 채 승용차에서 내리며 문을 잠가 버리자 안에 있던 콜이 철사로 문을 열라는 손짓을 보냈다. 부인은 철사를 유리창 틈새로 밀어 넣었고, 콜은 안에서 초조하게 외친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콜 총리의 '바보스러움'을 빗댄 조크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콜은 존경 받는 공인이었지 결코 무골호인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조크는 삶의 윤활유다. 링컨처럼 농담은 어색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 주고, 연설과 강연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특히 정치인의 말에 유머가 빠지면 그야말로 고명 없는 피자다. 또 콜에게서처럼 해학적 캐릭터가 있어야 인간적 매력을 얻게 된다. 장구채를 뚱땅거리듯 지저분한 언사를 낯짝 없이 지껄여대는 정치인도 문제이나 상황에 맞는 유머 하나 쓰지 못하는 정치인은 그 행위의 경직성이 사고의 딱딱함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작년에 한 코미디 작가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 세 명을 마구 '난도질'한 정치 풍자집을 내놓았다. 여기엔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등 흥미 있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우리는 그 연유보다 이를 받아넘기는 유머 감각이 누구에게 더 많은지 궁금해하지 않았나. 왜일까. 한국 정치 풍토가 유머가 발붙일 수 없을 정도로 살벌했기 때문이다.
 역시 수다스럽고 간사스러우며 갈근갈근 대중의 비위만을 잘 맞추는 정치인 또는 정치적 포퓰리즘도 문제이지만 정적을 향해 독설을 토해내는 정치인의 거친 입과 핏발 선 눈도 심각하다. 이런 이유로 한국 정치계에 생겨날 조크·농담·유머·해학에 대한 우리들의 그리움이 마냥 절절하다. 아니, 우리 현대 문화 전반에 전통적 해학의 복원과 변주와 부활을 간절히 기대해 보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말하려 들면 '볼 장 다 본 말'을 함부로 퍼붓고, 동네 구정물 혼자 다 마신 듯 걸고 상스러운 말을 토해내고, 설악산 보고 소양강 보듯 정반대의 말만 골라 쏟아내고, 뻘건 두 눈을 깜짝거리며 조조거리고 수다 떨고 들었다 놓을 기세의 말로 상대를 볶아댄다. 강아지 한 마리 앉힐 데 없이 속이 좁아 터졌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초리는 도대체 얼마나 사납고 매서운가.
 더 무서운 건 정치 영역 전체에 세력을 떨치는 거대어들, 자기 말에 의미와 진실을 집중시킴으로써 다른 말들을 빈 껍데기로, 그리고 가짜로 만들어 버리는 과밀어들, 보수 진보 좌파 우파 같은 이쪽 저쪽으로 가르는 방위어들, 정치적 신념의 요새 같은 전략어들, 혹은 적을 위협하고 겁주는 탱크어 미사일어들…. 이런 말들이 휙휙 공중을 날며 유머를 기다리는 우리들 의식을 무차별로 폭격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광 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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