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정신건강의 날에 즈음하여

▲ 이정배   영화평론가
▲ 이정배
영화평론가
친척 중에 정신장애가 있는 이가 있다.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던 그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 가까웠다.그런 탓에 서로의 언어와 행동 속에 무엇이 농담이고 장난인지까지 훤히 들어다볼 수 있었다.세월을 훌쩍 지나 중년의 나이에 그를 만난 건 경기도 어느 정신장애시설에서였다.긴장감이 역력한 그는 연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세월의 간극만큼이나 알 수 없는 거리가 느껴졌다.그러나 아주 잠깐 동안 그는 나와 지냈던 일들을 기억해내며 미소를 비추었다. 그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은 갑작스런 변화에 거부반응을 보인다.반면에 천천히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수용한다.시간이 지나는 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우리의 각종 기능도 쇠퇴해 가는 것이 순리이다.쇠퇴해가는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다른 기능들이 더욱 발달되기도 하고 새로운 기능이 살아나기도 한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 몸은 최상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단히 수고한다.그와 나의 차이는 변화의 속도뿐이다.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서 급작스레 나타난 변화된 그를 나는 쉽게 수용할 수 없었다. 내가 알았던 그리고 기대했던 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폭이 워낙 큰 탓에 나는 당혹감과 거부감을 표시하였고 그런 나를 그는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더 이상 이야기를 확대하지 않았고, 간간히 지난 일들의 조각들만 조심스레 나에게 던졌다.기억의 파편들을 겨우겨우 맞추어가며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섰다.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간 간격으로 인해 큰 미안함이 들었다. 자주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의 변화에 그렇게 거부감을 표시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통해 병원과 학교,교도소 등의 시스템이 왜 형성되었으며 이들 시설에 어떤 사회 집단적 심리가 작동했는지를 세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나갔다.이들 시설은 소위 정상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신체적 안전과 심리적 평안함을 위해 역사적으로 집단시설을 마련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고안된 것이라는 걸 증명해냈다.이전까지 가깝게 지내다가 급격하게 변화를 보인 이들에 대한 자신들의 두려움과 놀라움을 해소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이들 시설이라고 말한다.이들 소위 정상인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보인 이들에 대해 소통과 배려,이해와 나눔 대신에 차별과 격리,해결과 감시라는 방식을 선택했다.역사적으로 낯섦의 폭이 크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거부하기를 채택해왔다.일상이라고 부르는 자신들의 방식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자신들의 일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함께 지내기를 거부하고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를 포괄하는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생명체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음성언어일 수도 있고 몸을 통한 신체언어일수도 있다. 이미지가 파편화 되어 음성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들은 신체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려고 한다. 그러나 교양으로 무장한 정상인들은 신체적 언어를 저급하게 취급하여 적당한 거리를 설정해놓고 다만 음성언어로 소통하려고 한다. 파편화된 음성언어나 직설적인 신체언어에 대해 도무지 해석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정신장애의 실체는 소통의 단절이다. 우리는 정신장애라는 그럴듯한 울타리를 설치에 놓고 그 안에 안주하고 있다. 실은 우리가 만든 은유임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것이라 굳게 확신하면서 말이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