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호명 경동대 홍보센터장
▲ 유호명 경동대 홍보센터장
강원도의 백두대간은 말 그대로 백두(白頭) 곧 ‘흰머리’다. 그 눈부신 눈은 산자락과 바위에 쌓였다만, 떡시루의 쌀가루처럼 우뚝 선 소나무 잎 방석에도 켜켜이 앉았을 것이다.성삼문은 졸명할 때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이셔,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하였다.금강산 가장 높은 봉에 큰 소나무로 서 있다 천지간에 눈발 가득할 제 홀로 푸르리라는, 변치 않을 절개와 결기를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낙락장송’이란 표현은 조선에서 지은 말 같다. 중국 고전에서 찾을 수 없고, 소나무도 북방 고구려 고토에서나 흔한 나무라는 점이 그러한 추측에 무게를 더한다. 게다가 ‘낙락’(落落)이란 표현은 겨울철 눈과 연관된 말이다.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일향성이라는 식물 본성을 비껴 ‘가지가 땅을 향해 늘어지고 떨어진’ 큰 소나무를 이르는 말이다.‘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과는 달리,수평으로 팔 벌리거나 솟구친 어깻죽지에서 팔과 손만 아래로 늘어뜨린 모양이다.그리고 이러한 ‘落落’은 바로 찬 눈이 빚은 작품이다. 상하의 땅에 선 소나무가 눈 맞을 일 없고, 온대의 활엽수도 낙엽 지면 그만이니 역시 눈 맞을 일 없다. 오직 소나무만 내리는 눈을 푸른 잎 떨기마다의 넓적한 방석에 ‘떡살 앉히듯‘ 얹고 선다.
성삼문의 시조를 다시 읽자.「落落長松(낙락장송) 되야‥ 獨也靑靑(독야청청) 하리라」는 글귀에서 사람들은 ‘靑靑‘에 무게를 둔다.그의 당한 상황에 비추어 ‘홀로 푸르름‘이 중요하기는 하다만, 그러나 한발 비껴 생각하면 ‘靑靑‘은 타고난 바요 落落은 단련이다. 靑靑은 아무튼 소나무라는 품종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본래의 바탕일 뿐이요, 落落은 수십 년 꺾이지 않고 간난신고 감내해 얻은 고귀한 성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충신은 ‘落落長松 되야’를 靑靑 앞에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룰 수만 있다면, 그 때에 靑靑은 그저 당연지사이거나 바탕일 뿐이다.
지방대학 홍보센터장으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서 우리 재래종 소나무의 낙락(落落)하는 품성을 본다. 어려운 환경에 불구하고 우리 학생들이 수도권 유명 대학에 못지않은 취업률을 자랑함은, 배움이나 삶에서 책상물림이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여 최선을 다한 체득과 체화의 결과라 생각한다.

유호명 경동대 홍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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