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의 도요타, 천하대지의 풍수파워
현대의 신화는 여기서 그칠 것인가
동력 잃은 현대, 풍수적 결단 필요
현대(기아 포함)는 연간 800만대의 판매대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5위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2015년도 매출액 91조 9587억원,영업이익 6조 3579억원을 기록했다.한편 도요타는 2015 회계연도에 1000만대를 팔아 매출액 28조4000억엔(약 310조원),영업이익 2조9000억엔(약 31조원)을 달성했다.현대의 영업이익은 2012년 8조4000억원에서 2013년 8조3000억원,2014년 7조5000억원,2015년 6조3579억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반면 도요타는 2012년 1조3208억엔(약 14조원)에서 2013년 2조2921억엔(약 24조2000억원),2014년 2조7505억엔(약 29조원),2015년 2조8000억엔(29조6000억원)으로 증가한 추세다. (출처; 조선일보)
발전의 동력이 떨어진 현대와 지속적 발전하는 도요타의 선영을 찾아간다.많은 풍수인들은 정주영이 만든 현대(現代)의 신화는 그의 고향 통천에 모신 조부모 묘소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해방 이후 인,1946년 4월에 현대자동차 공업사 설립.1947년 5월에 현대토건사를 설립하였다.이후 정주영의 현대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며,한국 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다.이는 1946년 6월,부친을 천하대지를 방불하는 대명당에 모셨고,1952년 10월에 모친도 대명당에 모셨기 때문이다.정주영의 불굴의 의지와 노력도 부모님 묘소의 풍수파워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판단이다.
도요타의 출발은 사키치(豊田佐吉)로부터 시작되었다.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업을 잇는 대신에 발명가의 꿈을 키웠다.베틀을 돌리며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란 그는 직기(織機)의 발명에 몰두한다.1894년에 그의 첫 발명품인 ‘도요타식 목제직기’를 만들었다.전통 베틀에 비해 두 배 빠른 성능의 기기였다.이후에도 끊임없는 개량을 통해 1924년에는 그의 일생의 대작인 ‘G형 자동직기’를 개발하니,이는 당시 세계 최고의 자동직기로 평가를 받았다.이 프로젝트에는 키이치로(豊田喜一郞)도 참여한 것이 훗날 도요타 자동차를 창업하는 노하우를 습득한다.그들 부자(父子)는 미국을 방문한 뒤,앞으로의 세상은 자동차가 산업의 축이 될 것이라 직감한다.그러나 사키치는 너무 늙었고,국산 자동차를 만들라는 유훈을 남기고 1930년에 타계한다. 연구와 개량에 몰두한 키이치로는 1934년에 도요타 엔진의 개발에 성공하고,1937년에는 도요타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중략…)
이런 악재를 극복하기 위해 ‘도요타 재출발’을 선언한지 4년 만인 2015년에 도요타 역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괴력을 보여줬다.
현대의 영업이익은 도요타의 절반 수준임에도,직원들의 임금은 더 높은 수준이다.도요타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장인(匠人)이 회사의 중역에 까지 승진할 수 있는데 반해,현대의 장인들은 중도에 도태된다.이런 점이 두 회사의 경쟁력 격차의 요인이란 지적이다.게다가 현대는 창업자의 묘소가 흉지에 자리하니,회사의 동력은 점차 떨어질 것이란 풍수적 판단이다.
이 땅에도 도요타 선영을 능가하는 천하대지가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