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끝에 봄이 왔는가하면 어느새 절정이다.봄은 잡으려는 순간 이미 손아귀를 빠져나간다.봄은 아지랑이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매력일 것이다.4월도 중순으로 접어들고 봄의 저울추는 곧 여름으로 넘어가게 된다.천지 사방에 초목이 푸르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봄꽃은 이쪽에서 피는가하면 저쪽에서는 이미 진다.피고 지는 일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봄꽃이다.
오래 잡아 둘 수 없어 그 어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상춘(賞春)의 정(情)일 것이다.약속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또 올 것이지만 사람들은 마지막일 것처럼 이 봄에 매달린다.절기에 맞춰 드문드문 비가 내린 올 봄은 봄꽃이 마음껏 피었다.들판과 산하도 일말의 주저 없이 맘껏 푸른빛을 낼만큼 다 낸다.지난 주말 벚꽃이 절정에 이른 경포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렸다.꽃과 사람이 뒤섞여 그 경계마저 무너졌다.
남항진 옛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갔다가 경포의 벚꽃 길을 빠져나오는데 꽃과 사람이 뒤섞인 그 장관을 보았다.인산인해를 이룬 그 열기에 막혀 가다 서다를 반복했으나 조바심이 일지 않았다.막히면 기다리고 길이 열리면 가는 것이 이 봄날의 질서일 것이다.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는 아이를 낳고 키워서 오늘 짝을 지워 세상에 내보냈다.하객이 몰려들고 웃음꽃이 핀 그 혼사가 이 봄날의 자연 같았다.
남송의 학자 주희(朱熹)의 ‘춘일(春日)’에 이 무렵의 정서가 오롯하다.“화창한 날 사수가로 꽃놀이 나섰더니/가없는 풍광 한순간 새로워/봄바람 내 얼굴 스친 줄도 모르고/울긋불긋 온갖 것 이것이 봄이로세(勝日尋芳泗水濱 無邊光景一時新 等閑識得東風面 萬紫千紅總是春)”무르익을 대로 익은 봄은 이렇게 사람을 불러내고 일순 그 정취에 빠져들게 만든다.봄은 초목과 꽃이 빚은 색의 조화로 정의된다.
온갖 만물의 다른 색깔이 어울려 만들어낸 것이 봄이다.서로 다른 빛깔들이 다투듯 자태를 뽐내지만 결코 남을 밀어내지 않는다.있는 그대로의 각양각색을 받아들임으로써 공존한다.상대의 다른 것을 통해 내 존재를 돋보이게 한다.초록은 노란 꽃의 산수유와 연분홍의 진달래를 드러내고,그 꽃의 화려가 초록의 존재를 확인시킨다.만자천홍이 빚어낸 이 봄이 아수라의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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