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은 하나뿐인데 술은 셋이 마신다.달과 나 그리고 그림자!풍류시인 이백은 1300여 년 전 어느 봄밤에 “꽃 사이에 술 한 병 놓고/벗도 없이 홀로 마신다/잔을 들어 밝은 달 맞이하니/그림자 비쳐 셋이 되었네/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그림자는 그저 흉내만 낼 뿐/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봄날을 마음껏 즐겨보노라//…//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취한 뒤에는 각기 흩어지리니/정에 얽매이지 않는 사귐 깊이 맺어/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이라고 읊었다.그 유명한 월하독작(月下獨酌) 한 구절이다
중국 한대(漢代)에는 장진주(將進酒)가 불려졌다.“잔 드시게나/잔 멈추지 마시고/그대 위해 한 곡조 읊어보리니/풍악 소리 살진 안주 대단할 게 없다네/오로지 원하느니 내내 취해 안 깨는 것/예로부터 성현들은 다 흔적 없어도/오직 술고래만은 이름을 남겼다네”.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권주가는 더욱 노골적이다.“한 잔 먹새근여 또 한 잔 먹새근여. 꽃 꺽어셈하며(곳 것거 산(算) 노코)/무진무진 먹세 그려/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우해 거적 덥허/주리혀 매여가나//…//무덤 우해 잰납이 파람 불 제야 뉘우찬달 엇디리”.
시대는 다르지만 풍류(風流)는 한결같았다.‘한 말에 만 냥 술’을 흠뻑 즐겼던 옛 선비들.그러나 요즘은 어떤가.국세청이 조사한 올 1월 전국 일반주점 사업자 수가 5만5761명으로 1년 전(5만9천361명)보다 6.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하루 평균 10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퇴근길,서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던 선술집이 왜 사라질까.경제계는 장기적인 경기침체라고 입을 모으지만 꼭 그런 것 같지 않다.혼술과 집술에 익숙해진 생활습관은 아닌지….더 심해지면 히키코모리(병적인 외톨이)가 되고.
한 때 ‘세계 최대 술 소비국’으로 불렸던 한국.그러나 ‘폭탄주’와 ‘벌떼 회식’이 사라지며 주류시장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주류회사도 부지기수다.국민 1인당 84병씩 마시던 소주는 2015년부터 소비 부진에 시달린다.양주업계의 사정은 더욱 암울하다.술 소비 연령층이 줄어들고,안 먹고 안 마시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된다.저출산고령화 현상과 김영란법도 무시할 수 없다.‘술 안 권하는 사회’가 조금은 씁쓸한 요즘이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