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예현   한국여성수련원장
▲ 전예현
한국여성수련원장
출자출연기관에 대한 개혁 요구가 높다.공공기관장 대상의 ‘개혁 세미나’가 많아지고,상황을 점검하는 공문이 자주 오간다.세금으로 일부 예산을 지원받는 기관이 개혁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현장에서 일하다보니,한국여성수련원과 같은 기관이 개혁을 시도하려면 주변 도움도 절실하다는 것을 느낀다.악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지자체 그리고 감독기관과 지역 정치인들의 협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와 수련원 직원들은 악성 민원과 음해에 시달린 적이 있다.주문하지도 않은 각종 물품이 수련원에 도착해 있어 반품시키면,업체 관계자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이웃을 돕는 차원에서 공공기관에서부터 물건을 사라”고 집요하게 요구한 것이다.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고 수련원 운영에 필요한 물품이 아니라고 정중히 거절해도 “그럼 사비로 사라.기관장이 자기 주머니만 채우지 말라”며 수차례 인신공격 폭언을 했다.불가피하게 휴대전화 녹음을 하겠다고 하자,그는 방법을 바꿔 여직원들을 괴롭혔다.필자가 출장을 간 기간에 사무실 유선 전화를 대신 받은 직원에게 “원장이 사준다고 했으니 물건을 수령하라”고 거짓말을 했다.또 다른 민원인은 공공성과 전혀 무관한 요구를 수차례하면서 “들어주지 않으면 지역과 상생(?)하지 않는다고 지자체와 의회에 소문을 내 시끄럽게 만들 것이니 고생 좀 해보라”고 했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이런 일로 낙심한 사례가 있다.실무진간의 찬반이 오갔던 사안에 대해 안전을 이유로 보류 결정이 났다.그러자 그 사업 이해관계에 관련된 주민이 사안을 반대한 젊은 직원을 공격하는 허위 소문을 퍼뜨려 기관 내부까지 분열시켰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관의 직원들,특히 여성들에게 반말과 폭언을 하고,본인과 거래하면 고위층에게 잘 말해주겠다고 터무니없는 거래를 시도하며,개혁을 시도하는 직원을 괴롭히는 악의적 민원을 넣는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신고하고 법적 대응하면 된다.하지만 지역에 있는 출자출연기관의 특성상 직원 대다수가 그곳 주민이라 민원인과 자주 마주치고,가족들도 인근에 거주하고 있어 신고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또 본인 요구를 거절당한 이가 앙심을 품고 곳곳에 악성 민원을 접수시키면,개혁을 시도한 직원이 수많은 문서를 찾고 일일이 해명해야 하면서 결국은 ‘업무 폭탄’으로 보복을 당하는 모양새의 이중고를 겪는다.
물론 민원이 나쁜 것은 아니다.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제안,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해 기관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민원도 많다.또 지자체,공공기관,감독기관들은 이런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민원 창구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특정인 이권을 위해 일부 악용되는 것도 사실이다.개혁을 시도하는 이들을 좌절시키는 음해성 민원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이에 대해 기관도 단호히 대처해야 하나,지자체와 감독기관 그리고 정치인들도 음해를 일삼고 부당한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게는 한 목소리로 대응해줘야 한다.
개혁을 하라면서도,“공공기관은 조용한 것이 미덕”,“시끄러우면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니 대충 조용히 가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모순이다.썩은 부분을 수술하면서 고름은 건들지 말라는 것과 같다.
출자출연기관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개혁을 시도하는 직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지역사회에서 힘을 모아주고 응원해주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