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구   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
▲ 서경구
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
세월호 참사 3주기였던 지난 일요일은 맑고 따스해, 가고 오지 못하는 것의 슬픔을 역설적으로 키워 보였다. 오후, 한림성심대 뒤편 노루봉을 한 시간 남짓 걸었다. 동백은 이미 지고 산벚꽃이 난만했다. 짐작보다 골짜기가 깊고 갈래도 복잡해 두 시간을 넘길 수도, 한 시간 안쪽에 끝낼 수도 있는데다 집 가까이 있어 나는 틈 날 때마다 자주 여기를 오르내린다.
생명 존중과 안전하게 생활할 문화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세월호 참사에 비춰 올해부터 도내 일반계 고등학교가 전국 어디에도 없는 ‘숨요일’을 운영하는 것은 여러모로 뜻깊다. 숨요일은 수요일의 ‘수’와 두렛상처럼 여럿이 빙 둘러앉은 모양새의 ‘ㅁ’을 더해 만든 글자다. 수요일엔 보충수업이라 불리는 방과후 교과활동이나 야간자율학습을 멈추고 대신 학생들이 자기주도적으로 각종 자율 또는 학술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마당과 시간을 마련해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진작부터 자율과 창의를 강조해 왔으면서 정작 그것을 발휘할 여건, 즉 시간과 장소에 대한 고민도 상상력도 이제까진 없었다. 어디엔가 자율과 창의라는 크고 환한 달이 있다곤 했지만 아무도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여주진 못했다. 숨요일은 바로 그런 교육의 보기 좋은 손가락이 될 것이다.
교육과정뿐 아니라 학교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숨요일을 너무 서두른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지난주, 원주 치악고등학교에 가서 5년째 그 학교에 근무하는 허석재 교무부장교사를 면담한 까닭이다. 이름은 달랐지만 치악고는 3년전부터 이 체제를 실시해온, 그러니까 숨요일의 태생지인 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느냐는 물음에 평준화 첫해의 분위기를 말하는 그의 표정은 무겁고 힘겨워 보였다. 곧 학교 구성원들과 학교 문화 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각종 자생 프로그램의 활성화, 졸업생들의 감격스러운 고교 생활 ‘간증’을 열거할 때부터는 득의의 눈빛이 확연했다. “왜 우린들 처음에 걱정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막상 판을 벌여 놓으니 아이들의 호응이 대단하더군요.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우리의 상상력이 부족했구나를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지난 3월, 도내 고교생 91%가 숨요일의 취지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도내 최대 규모인 치악고가 교육과정의 혁신을 시도하면서 학교 분위기를 확 바꿨다. 도교육청은 아이들의 요구에 답하고 변화의 실례를 과감히 수용했다. 강원에만 있는 숨요일, 아이들이 자발적이고 자기주도적으로 자신들의 숨구멍을 찾고 만들어가는 교육 환경이 마련되었다. 오늘, 다시, 저마다의 나를 키워가는 숨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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