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헌   전 속초양양교육장·시인
▲ 김종헌
전 속초양양교육장·시인
지난 3월 교육장 임무를 마치고 2년 만에 학교현장으로 돌아왔다.40여년을 늘 아이들과 같이 생활해왔지만,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그것도 2년 만에,그리고 내 교직생활의 마지막 만남을 만들어 줄 아이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설레었다.부임 첫날,한 시간 일찍 내가 부임할 학교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만천4거리 교차로를 먼저 가보았다.8시 15분부터 45분까지 30분 동안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들을 출근길에 등교시키려는 부모님의 차량행렬과 인근 아파트 단지 3곳에서 등교하는 학생들로 횡단보도가 넘쳐났다.교통경찰 한 분이 열심히 왔다 갔다 하시면서 차량을 통제하고,아이들을 안전하게 건네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고 내일부터 같이 교통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그렇게 노란 깃발을 들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이제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노란 깃발을 접어야 할 시간을 안다.8시 45분.경찰관이 서있는 인근아파트 횡단보도에 도움반에서 공부하는 A학생의 모습이 보이고,내가 맡은 횡단보도 앞에 2학년 B학생이 모습을 보이면 등교지도를 끝내도 된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뒷마무리를 하고 학교로 가다 보면 느릿느릿 걸어가는 도움반 A학생과 어깨를 나란히 걷게 된다.한 일주일 정도는 A학생과 나는 그냥 손을 꼭 잡고 학교까지 묵묵히 걷기만 했다.일주일이 지나자 A학생이 처음 나에게 말을 걸었다.오늘 날씨에 대한 일기예보를 큰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오늘은 구름이 조금 끼고,일교차가 심해서 감기를 조심해야 된대요.그리고 미세먼지는 보통이래요.” “그래,교장선생님도 감기 안 걸리게 조심 해야겠네.” “예! 조심하세요.”
그 다음날의 주제는 장애인 이해교육이었다.“장애인이란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말합니다.장애인에게 왜 불편하냐고 물으면 돼요? 안돼요?” “안됩니다.” “장애인에게 무조건 칭찬을 하는 것은 돼요? 안돼요?” “무돼건 칭찬하는 것은 안됩니다 어떤 일을 잘했을 때만 칭찬을 합니다.” “장애인을 보면 무조건 도와주는 것은 돼요? 안돼요?” “도와 달라고 할 때,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날은 같은 대답을 10번쯤 했더니 학교에 도착했다.오늘은 과학시간 공룡에 대한 이야기다.“볏이 두개 달린 도마뱀이라는 뜻을 가진 공룡은 딜로포사우루스라고 해요.”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 두개로 걸으면서 다른 공룡을 잡아먹는 무서운 공룡은 티라노사우루스에요.” “3개의 뿔을 가진 초식공룡은 트리케라톱스에요.”
그리고도 A는 다섯 마리의 공룡이름을 더 말했는데 나는 전혀 그 공룡들의 이름과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 기억조차 할 수가 없었다.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쩔쩔매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다.그 동안 A에게 배웠던 수업 중에 오늘 공룡수업이 제일 어려웠다.엎친데 덮친다고,교문 안을 들어서 놀이터를 지나는데 1학년 남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인사를 하더니 무척 반가워했다.
어제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우물쭈물 했더니,금방 울상이 되었다.등에서 진땀이 난다.이 10분의 아침 길거리 학교가 나는 매우 소중하다.아이들에게서 무엇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내가 잊고 살아온 것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내일 아침 일찍 또 내가 눈을 떠야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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