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현   전 춘천시 경제인 연합회장
▲ 이세현
전 춘천시 경제인 연합회장
얼마 전 필자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농촌 고향 동네를 다녀왔다.한 젊은 아낙이 냉이 캐는 모습을 보니 어릴 적 고향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생각이 났다.50~60년대 보릿고개(춘궁기)시절 학교(초등학교)다녀오는 길에 길옆 밭두렁에서 메싹을 캐 책보에 싸서 집에 오면 엄마가 밥솥에 쪄서 주셨다.그때 달착지근한 메싹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요즘은 온갖 봄나물이 밥상을 차지한다.보릿고개의 시작이기도 한다.냉이,달래,머우,원추리,개망초,미나리,고사리,쑥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복숭아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조팝나무 꽃이 만개하는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 4월 20일경이 되면 그때부터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절기가 여름을 알리는 입하(立夏)와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고 하는 소만(小滿)을 지나 망종(芒種)이 되면 누렇게 익은 겉보리를 베어내고 모심기도 이때 끝내야한다.서둘러 디딜방아에 보리를 찧는 아낙네는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보릿고개에 굶주린 자식들 보리밥을 먹이려는 엄마의 이름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왜 망종전에 수확하라고 했을까? 수확시기가 지나면 보리 줄기가 약해져(고쇄서) 쓰러지기 때문이다.망종이라는 말은 보리나 벼 이삭 등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수확하고 심기 좋다는 뜻에서 붙여진 절기 이름이기도 하다.이때 절기 풍속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후가 온화해 보리를 많이 재배했던 남쪽지역에서는 망종무렵에 발등에 오줌을 싼다고 할 정도로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보리수확을 하고 나면 보릿고개를 넘기며 굶주림에 시달렸던 가난한 농민들은 비록 꽁보리밥이지만 한동안 배고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 벼들이 싱그럽게 자라는 모습도 농부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감싸 주었다.오직 농사일에만 매달렸던 가난한 농민들이 모처럼 배불리 먹고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한사발에 시름을 잊던 시기가 바로 망종무렵이다.필자도 보릿고개 막바지인 망종때면 즐거움이 있었다.이때쯤이면 뽕나무 오디가 익는다.하교길에 책보를 밭뚝에 던져놓고 친구들이랑 뽕나무에 올라가 누가 먼저 따먹을 새라 입과 뱃속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고 런닝구에 오딧물을 들여 집에 가면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곤 했다.밀그을음도 먹을만하다 밀을 소여물 끓이는 아궁이에 그슬린다.뜨거우니 두손을 바꿔가면 손바닥으로 살살비벼 껍질을 후후 불어내고 따끈한 밀알을 추려 한입 씹으면 톡톡터지는 밀알의 맛이 구수했다.옆에 형 동생입이 시커멓다,서로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보릿고개의 세대들은 이제 하나둘 세상을 떠나가고 필자와 같은 60대가 보릿고개 마지막 추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지금의 햄버거 피자 세대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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