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 자리에 잎이 돋는다.겉치레를 밀어내고 내면을 키우기 위한 자연의 법칙.꽃이 졌다고 서러워 할 일도 아니거니와 잎이 돋는다고 심드렁할 것도 없다.자연은 본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고 갈 뿐이다.그렇다고 매년 반복되는 피고 짐,나고 죽음이 똑 같다고 생각하면 착각.피고 지는 시간이 다르고,머무는 기간이 제각각 아니던가.사람의 눈과 귀가 인식하지 못할 뿐,시간의 부대낌 속에서 빚어지는 생존경쟁은 결국 먹고 먹히는 자연의 이치다.삶은 곧 먹는 것이므로….
먹기어원학,즉 ‘음식의 언어(Language of food)’를 가르치는 스탠퍼드대학 댄 주래프스키(Dan Jurafsky)교수는 “음식과 음식 이야기에는 인간의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며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가족과 공동체 문화와 합일하고 싶다는 열망,낙관주의와 긍정의 흐름에 올라타고 싶다는 욕구 등이 그 것”이라고 했다.음식에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뿐만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도 스며있다는 것이 주프래스키 교수의 진단이다.그의 주장을 ‘정선’에 접목시키면?
고려시대 학자 정추는 “정선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마치 깊은 우물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좁다”고 했다.산이 높고 골이 깊은 정선의 특성을 갈파한 말이다.1887년 정선군수로 재직했던 오횡묵은 ‘정선총쇄록’이라는 일기에 “(정선 백성은)쌀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며 “이들의 고난이 강원도에서 으뜸”이라고 썼다.정선향토학자 진용선씨가 발품을 팔아 2005년 펴낸 ‘정선의 전통음식과 약초’에도 정선 사람들의 애환이 오롯이 배어 있다.감자밥과 강냉이밥,기장밥,수수밥,조밥,콩밥,콩무거리밥,콩깍지밥,가랑밥,메밀느쟁이밥,감자붕생이밥,곤드레밥,사쿠리밥 등이 그들의 주식이었다.
팍팍한 삶을 딛고 자신들의 음식에 고유의 이야기와 가치를 담아낸 정선사람들.피나무통에 갓김치를 담갔던 창의와 지혜가 그들의 음식에 짙게 배어있다.요즘은 그들의 음식에 맛과 멋,힐링을 더했다.산과 들,강이 건넨 온갖 식재료를 그들의 음식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정선군 북평면 나전역 일대에서 열리는 ‘정선토속음식축제’는 정선의 맛을 감별하는 특별한 자리다.304가지 맛깔스런 음식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곳.이 봄, 나는 정선을 먹으러 간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