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면 감천” 평창 유치 매듭지은 MB 리더십
토마스바흐가 이끄는 뮌헨 맞서
‘차분·겸손’ 원칙 유치전략 실행
IOC에 지극 정성·설명회 맹연습
평창, 95표 중 63표 득표 ‘압승’

▲ 지난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유치 PT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본사DB
▲ 지난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유치 PT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본사DB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전은 이명박 전대통령에게는 임기말 최후의 빅카드였다.2012년 대선을 한 해 앞둔 상황에서 이명박리더십을 대내외에 각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2018동계올림픽 유치전 상대는 독일 뮌헨.동계스포츠의 저변이나 국력으로 비교가 안되는 상대였다.더욱이 뮌헨은 차기 IOC 위원장 유력후보인 토마스 바흐가 유치전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이 전대통령의 더반행을 앞두고 참모진 일각에서는 “유치가 되지 않을 경우 위험 부담이 더 크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앞서 노무현 전대통령이 IOC 총회현장인 과테말라에 가서도 2014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체면을 구긴터라 이 전대통령의 더반행은 신중하게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이 전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더반행을 결심했다.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IOC역사상 세번째 도전에서 성공한 나라가 없었다”며 “평창의 세번째 도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이어 “다른 지역이었으면 나 역시 포기했을지 모른다.그러나 강원도는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그런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방관할 수 없었다.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강원도가 발전할 수 있다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이 전대통령은 IOC평창실사단 방문을 비롯해 올림픽 유치에 만전을 기했다.더반에 도착한 대통령전용기에는 색다른 휘장이 부착돼 있었다.통상 대통령휘장이 붙어있던 자리에 올림픽 후보 도시 평창 엠블럼을 달아 놓은 것이다.이 전대통령은 평창유치위원회 단복과 조끼,넥타이 차림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김윤옥 여사는 평창 엠블럼을 새긴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더반의 평창 유치전략은 크게 두가지였다.하나는 지성(至誠)론이다.이 전대통령은 더반 현지에서 주재한 회의를 통해 “지성이면 감천이다.하늘을 움직이자”고 했다.“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다음은 ‘차분하면서도 겸손하게’라는 원칙이다.당시 박용성 KOC위원장을 수행했던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호텔에 들어서는데 20명이 넘는 경호인력이 수행하더라”며 “이를 두고 지난 하계올림픽 유치전을 떠올리며 공연히 IOC위원을 자극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고 기억했다.이같은 사실은 곧바로 이 전대통령을 수행했던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보고됐고 이후에는 필수요원 2∼3명이 경호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당시 함영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의 회고는 이 전대통령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얼마나 집중했는 지를 보여준다.“국내외 살인적인 일정 중에도 IOC 위원의 절반 이상을 직접 만났고,거의 전 IOC 위원에게 편지를 썼으며, IOC 위원과의 단 한 번 통화를 위해 다섯 차례, 열 차례 전화를 걸기도 했다.경쟁 도시 위원 6명을 제외한 전 IOC 위원(104명)에게 ‘맞춤형’ 편지를 보내 마지막 지지를 호소했다.전달도 우편이 아니라 그 나라 주재 대사나 특사가 직접 전하는 식으로 정성을 다했다.아직 지지가 불투명한 IOC 위원 열두서너 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안 되면 자동응답기에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꼭 통화하고 싶었는데 연결이 잘 안 돼 메시지를 남깁니다.그간 평창 유치에 보여준 관심과 지지에 감사드리며 더반에서 만나뵙기를 기대합니다.’시차를 맞추기 위해 심지어 청와대 회의(국민경제대책회의 2011년 6월 30일) 도중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자리를 떠나 IOC 위원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더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17시간 동안 이 대통령은 만사 제쳐놓고 오직 영어 설명회(프레젠테이션) 연습과 IOC 위원들 신상자료 공부에 집중했다.프레젠테이션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갈라졌으나 이 대통령은 중단하지 않았다.‘목이 쉬어야 더 감동을 받아요.’”(중앙선데이,2014.12.14 )함 전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이같은 노력에 대해 “총감독뿐 아니라 영업·홍보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 역할이었다”고 평가했다.
유치가 확정된 6일.평창은 95표 중 63표를 쓸어담았다.지긋지긋한 2차전 역전의 불운도 멈췄다.이 전대통령은 7월13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동계올림픽대회 유치에 국민이 하나 되었듯이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도 우리 국민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하겠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평창은 이 전대통령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올림픽 유치직후인 2011년 7월 8~9일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전대통령은 41.3%의 국정지지도를 보였다.한달 전(33.9%)과 비교,7.4%p 상승했다.역대 4년차 대통령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이로 인해 이 전대통령은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정권말기를 연착륙할 수 있었다. 송정록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