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산다는 것은 대형마트에서 가성비 좋은 상품을 고르듯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하지만 올해 열린 귀농귀촌박람회는 딱 대형마트 크기의 전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새로운 생활양식을 찾아보라는 것처럼 열렸다.귀농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알찬 정보를 제공하는 귀농귀촌박람회지만 핵심 정보가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결과는 뻔한 노릇이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박람회를 ‘아무 쓸모없는 일’이라고 타박만 할 수는 없다.다수의 국민에게 농업이나 농촌은 생소한 단어는 아니지만 깊은 정보가 없어 박람회가 조금은 기여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본다는 얘기다.그래도 핵심이 빠졌다면 문제가 많은 행사라고 결론짓게 된다.
올해 귀농귀촌 박람회는 ‘청년’에 초점을 맞췄다.당연히 그럴 만한 기획이었다.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인데,농촌에는 젊은이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은가?가구주 연령이 40세 미만인 청년 농가 수가 고작 1만4000여 가구,전국 농가의 1.3%에 불과하다.이러한 점을 살려 박람회를 기획한 점,여기까지는 좋았다.그러나 박람회 성격을 대표하는 주제어 ‘4차산업혁명,청년 농부가 이끈다!’를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귀농귀촌 박람회가 열리던 시기 필자는 충청도 어느 농장에서 쉼 없이 쌈채소를 수확하며 농사를 배우는 젊은 귀농인들을 만났다.또 같은 동네에 귀농해 자리잡은 지 언 10년이 넘은 40대 중반 농민의 하소연을 들었다.매입하기에는 농지 가격이 너무 높고,농지를 임차해도 농산물 가격이 낮아 임차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러한 현실에 4차산업혁명과 청년 농부를 연결짓지 못해 아연실색하는 것은 필자가 과문한 탓일까.아니면 그런 언사는 그저 말 좋아하는 이들의 사치일까.모든 서커스의 성패는 흥행 규모로 판가름 나는 법이다.아무리 초현실적이고 기괴한 짐승이라도 일단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 수만 있다면 서커스에는 어김없이 사용된다.이렇듯 유행에 민감한 21세기 한반도 사람들에게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하루에도 네 번쯤은 듣게 되는 등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명사가 됐다.
이 시점에서 시골살이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귀농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한마디 권하고 싶다.놀부처럼 어리석게 생각하지 말라.판소리 ‘흥보가’에서 놀부는 제 손으로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걸 다시 치료해주면 제비가 고마워하며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줄 거라고 생각했다.흥부가 제비의 다친 다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도와준 결과가 대박이라는 점을 모르고 제비의 부러진 다리부터 대박까지의 순서와 형식만 생각했을 터.귀농을 시도하는 수많은 도시민에게 박람회 등의 장소에서 전달되는 이른바 성공사례는 대체로 ‘사건의 형식적 발생 순서나 외피’를 알려준다.성공사례 너머에 있을 심층적인 진실이나 진정한 교훈은 박람회장을 거닐거나 몇 사람 이야기를 듣고 얻을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따라서 진정 귀농을 꿈꾸고 있다면 제비 다리 분질러 대박을 기대하는 어리석음보다 그 넘어 핵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