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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 부재가 시대 비극의 시작”

송호근 교수 춘천서 집필 첫 소설
신헌 ‘심행일기’ 바탕 근대사 담아
격동기 고뇌 통해 갈등 해법 제시

최유란 2017년 05월 12일 금요일
▲ 소설 ‘강화도’를 펴낸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최근 춘천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유란
▲ 소설 ‘강화도’를 펴낸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최근 춘천의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유란
“신헌이 첫 소설의 주인공인 것이 필연처럼 느껴졌죠.”
20여년 전 마련한 춘천의 집필실에서 역사 인물 신헌을 주인공으로 첫 소설을 쓰던 송호근(62)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헌의 묘역이 자신의 집필실에서 단 10분 거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전율했다.신헌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이 마치 운명처럼 여겨졌다고 그는 회상했다.최근 역사소설 ‘강화도’(나남)를 펴내며 소설가로 변신한 대한민국 대표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를 만나 소설의 뒷이야기를 들었다.‘강화도’는 여러모로 춘천과 인연이 깊은 작품이다.송 교수가 한림대 교수로 재직하던 1990년대 춘천 사북면 송암리에 마련한 집필실에서 쓴 책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인 신헌이 잠들어있는 곳 또한 춘천이기 때문이다.지난해 12월 대통령 탄핵 정국을 겪으며 송 교수는 신헌의 이야기를 그린 역사소설 집필을 결심하고 두 달여 동안 하루 10시간씩 몰두해 ‘강화도’를 완성했다.
글을 쓰며 신헌의 일대기를 추적하던 중 그의 묘역이 춘천에 있다는 기록을 발견했고 묘역을 찾아 나선 송 교수는 지난 1월 말 그가 지난 20여년 동안 늘 오가던 길목에 신헌의 묘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소설이 완성된 봄,그는 책과 소주를 들고 묘역을 찾아 ‘동네 어른’께 인사를 드렸다.송 교수는 신헌을 ‘날아오는 창을 붙잡고서 자신이 쓰러지며 창이 조선의 깊은 심장에 박히지 않게 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 강화도   송호근
▲ 강화도
송호근
조선의 유학자이자 무관,외교관이었던 신헌은 흔히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잘 알려진 강화도수호조규(1876) 당시 조선을 대표해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인물이다.송 교수는 신헌이 강화도수호조규 체결 과정을 소상히 기록한 ‘심행일기’를 바탕으로 격랑의 근대사를 소설로 펼쳐냈다.신헌은 봉건과 근대 사이의 경계인이었다.무력을 앞세워 밀려오던 외세와 쇄국의 가치를 고집하던 사대부 사이에서 그는 두 세력을 중화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송 교수는 “오늘날 한국 운명의 기원이자 지금의 사회와 꼭 닮은 ‘오래된 미래’인 그 당시,중심에 서 있던 신헌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이상할 정도로 그에 관한 연구가 없다”며 “역사의식의 부재가 이 시대 모든 비극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한평생 논리와 이성으로 점철된 학자의 길을 걸어온 그가 환갑이 넘은 나이에 문학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딛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사드 배치 갈등 등 불안정한 세계정세 속 탄핵 정국까지 겪은 오늘날 대한민국에 신헌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파고들기 위해 문학의 힘을 빌렸다.격동기 한가운데 서 있던 신헌의 상황과 갈등을 소설로 풀어내며 시대의 거울이 되고자 했다.최고의 사회학자이자 갓 데뷔한 신인 소설가로서의 계획을 묻자 송 교수는 두 영역이 분리돼있지 않다고 답했다.“같은 이야기도 논리로 쓰면 논문이 되고 감성과 심리를 투입하면 문학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래도 차기작은 또 다른 개화기 인물을 다룬 소설이 될 것 같다며 “오늘날 체제가 발원한 격동의 시기,근대적 주체성을 갖기 위해 시대의 고뇌를 짊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현시대를 비추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유란

송호근 교수 약력
△1956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방문교수,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시민의 탄생’(2013) ‘촛불의 시간’(2017)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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