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중   문학평론가·국가혁신포럼 대변인
▲ 김경중
문학평론가·국가혁신포럼 대변인
동네 아이들은 멀리 집을 떠난 거인의 정원에서 날마다 함께 놀았습니다.봄이면 고운 꽃이 만발하고,가을이면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는 탐스러운 정원이었지요.하지만 집에 돌아온 거인은 아이들을 정원에서 내쫓았습니다.자기 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였으니까요.아이들이 정원을 떠나자 따뜻한 계절도 떠났습니다.정원은 언제나 겨울이었습니다.눈과 서리와 차가운 북풍만 가득했지요.거인은 봄이 오지 않는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봄을 기다렸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거인은 정원에 봄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작은 구멍으로 몰래 들어온 아이들 덕분이었지요.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봄을 몰고 온 것입니다.하지만 구석 자리에는 아직도 매서운 북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키가 작은 한 아이가 나무에 오르지 못한 채 울고 있었지요.거인은 그 아이를 나뭇가지 위에 앉혀 주었습니다.그러자 꽃은 활짝 피고 온 정원이 봄의 품에 안겼습니다.아이는 거인의 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거인은 담장을 허물고 모든 아이들을 정원으로 초대했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거인의 정원’ 줄거리이다.오래된 동화지만 지금 다시 읽어도 시대를 초월한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아이들과 어른 모두에게 재미와 교훈을 안겨주는 참 좋은 동화다.아이들의 발길과 웃음소리가 끊어진 거인의 정원이 언제나 겨울이었듯이 국민의 목소리와 촛불의 열기가 닿지 않았던 어느 거인의 집도 오랫동안 꽃이 피지 않고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추운 겨울이었다.
이렇듯 담장 밑의 구멍으로 몰래 숨어들어 온 용기 있는 아이들 몇 명과 한 줌의 봄 햇살만으로도 세상은 밝고 따뜻해질 수 있다.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어려운 고등수학은 척척 풀면서 이렇게 쉬운 삶의 이치는 터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마음의 감옥에 가둔 채 분노와 좌절,미움과 절망으로 신음하며 귀중한 생명을 헛되이 사르고 있는가?어떻게 하면 다시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 신영복 선생의‘나무야 나무야’라는 책에는 한 목수의 이야기가 나온다.“나와 같이 징역살이 하는 노인 목수 한 분 있었다.언젠가 그 노인이 나에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 바닥에 집을 그렸다.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다.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우리는 지붕부터 집을 그리는데 그 노인 목수는 먼저 주춧돌을 그리고 다음에 기둥을 그렸다.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다.세상에서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식함이 부끄러웠다.”
청와대에 새 주인이 들어 왔다.그는 소통하는 대통령,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그리고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광화문 정부청사에 집무실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새 정부는 이제 권위주의와 불통이라는 헌 집을 허물고 국민통합과 개혁이라는 새 집을 지어야 한다.그 동안 우리는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나라라고 자화자찬했으나 이번 새 정부가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기본이 덜 된 나라인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이제 요란한 구호와 현란한 이미지 정치를 청산하고 ‘기본이 바로 선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붕부터 그리던 그림을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힘겨운 나날 끝에 비로소 봄이 찾아오자 굳은 흙더미를 밀어내고 그 안에 있던 생명들이 힘차게 움터 올랐다.그러나 나라 안팎의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무엇보다 국가안보와 민생안정,그리고 국민대통합은 시급한 정책과제다.이외에도 청년실업,교육,저출산,노동현안,양극화 문제 등 얼키고설킨 실타래를 새 정부가 어떻게 풀어나갈 지 궁금하다.풀어야 할 실꾸리는 시간이 걸려도 꼼꼼히 풀어야 한다.국민들은 능숙한 장인의 솜씨를 기대하며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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