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묵호등대

육지와 맞닿아 있으면서 외면해 사는 바다.

그 바다가 별을 덮고 잠들었다.

고요한 어둠의 바다를 가르는 고깃배는 육지가 멀어지도록 점점 더 바다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싱싱한 고기를 잡아 올려 뭍으로 돌아가기까지 고깃배는 한동안 바다에서 일렁여야 한다.

그물에 걸려 허연 고기의 뱃살만이 빛이면 빛.

어둠 속의 고깃배는 또 하나의 그물에 걸린 고기다.

빛이 없는 고깃배에 돌아올 곳을 일러주는 등대는 바다를 떠날 때부터 실처럼 길게 연결됐다.

그 불빛은 한시도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한곳만을 응시한다.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등잔불처럼 등대는 바다를 비추며 임무를 완수한다.

섬처럼 우뚝 선 곳에서 우주선 마냥 빙글빙글 도는 등대의 불빛은 잠시도 멈춤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여러가지 글귀와 벽화가 그려진 묵호 등대 논골담길
▲ 여러가지 글귀와 벽화가 그려진 묵호 등대 논골담길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이의 눈빛을 빛나게 만드는 불빛은 바다에서 생명을 건져온다.

고깃배의 일렁임이 출렁임으로 바뀔 때 바다는 육지로 살결을 벗겨낸다.

살결을 타고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 온 어부는 밤새 신호를 보내온 빛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새벽의 바람은 언덕을 핥으며 대지를 깨운다.

그렇게 서로 기대온 빛과 고깃배는 언덕에 좁은 골목길을 내고 담도 쌓았다.

연록색이 바다와 맞닿은 그 곳은 낮엔 화방이며 밤엔 보석이다.

점점이 박힌 빛나는 보석은 사람의 소리로 더욱 화창하다.등대를 우뚝 세운 바람의 언덕에 오르면 바다를 마신듯 시원하다.

간밤에 육지를 외면했던 바다는 한줄기 빛에 숙녀가 됐다. 홍성배 sbho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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