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 배출 등용문 ‘개벽’…한국 잡지언론 뚜렷한 족적
2004년 도 ‘문화인물’로 선정 재조명
춘천 차상찬 묘소 흉지탓 이장한 듯
고향 길지로 묘 이전 선생 선양 잇길

▲ ‘청오 차상찬 잡지 기념관’내에 전시된 개벽과 별건곤 잡지. 춘천 동면 월곡리 소재.
▲ ‘청오 차상찬 잡지 기념관’내에 전시된 개벽과 별건곤 잡지. 춘천 동면 월곡리 소재.
“차상찬 선생을 아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이름이 생소했다.선생이 태어난 마을을 찾아보니 필자가 태어나 자란 마을과는 십리 길도 안 되는 이웃 마을이었다.차선생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춘천 토박이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청오(靑吾) 차상찬은 지금부터 130년 전인 1887년 2월 12일 춘천시 송암동 자라우 마을에서 성균관 진사를 지낸 차두영(車斗永)의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18세에 상학·상준의 두 형과 진보회에 가입하여 평생을 천도교에 몸담게 된다.1913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한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차선생의 삶은 한국 잡지언론 100년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니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개벽의 역사와 함께한 삶이었다.1919년 3·1독립운동 이후,일제의 통치가 문화정책으로 바뀌자 월간 종합잡지 ‘개벽’이 창간되었고 선생은 ‘개벽’지의 창간동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언론사에 선구적 역할을 한 ‘개벽’은 판매금지 34회,정간 1회,발행정지 1회 등의 일제 탄압을 받았다.그리고 1926년 총독 사이토(齊藤實)가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구실로 발행을 금지 당했고 결국은 통권 제72호로 ‘개벽’은 폐간을 당한다.이때 일제는 잡지를 모두 수레에 실어내서는 한 권씩 일일이 작두질을 하는데 차상찬은 개벽지를 싣고 가는 수레에 매달려 엉엉 울었다고 한다.이 광경을 목도한 당시 사람들은 ‘차상찬은 목이 달아질지언정 바른 말을 할 인물’이라고 했다.차상찬은 1927년 개벽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소파 방정환과 서대문형무소에서 약 4개월의 옥고를 치르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 차상찬 선생묘소 파묘 터.송암동 자라우마을 소재.파묘 터를 확인해 보니 흉지에 모셔져 있었다.
▲ 차상찬 선생묘소 파묘 터.송암동 자라우마을 소재.파묘 터를 확인해 보니 흉지에 모셔져 있었다.
1931년 방정환이 33세로 요절하자 개벽사의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모든 책임을 떠맡는다.1934년 개벽을 복간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4호까지만 속간할 수 밖에 없었다.차상찬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 개벽사를 이끌어 가면서도 ‘개벽’을 위시하여 ‘혜성’ ‘부인’ ‘어린이’ ‘신여성’ ‘학생’ ‘제일선’ ‘별건곤’ 등의 잡지를 간행한다.모든 잡지에는 선생의 투철한 계몽사상과 민족정신이 깃들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개벽’은 신문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소설가 김동인 현진건 나도향 주요섭과 시인 김억 김동환 주요한 등 당대 유명 문학인들을 배출한 등용문인 셈이었다.소월의 ‘진달래꽃’,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같은 작품이 ‘개벽’을 통해 발표된 것은 많은 사람이 알지만 정간과 속간,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면서 개벽을 이끌어왔던 사람이 차상찬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벽사에 근무했던 박진(朴珍; 1906~1974)은 그의 수필집 ‘세세년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고만 쓰는 청오였다.까무잡잡한 얼굴,훌렁 벗겨진 머리에 멋지게 기른 콧수염… 역사에 있어서는 뉘에게 뒤지지 않았고 인물만평,사회풍자,재치가 있는 각종 기사를 두루 쓰니 개벽사에서 나오는 잡지에는 그의 글이 안 실리는 데가 없고 안 실리는 호(號)가 없었다.소파(小波)가 기둥이라면 청오는 들보였고 청오가 기둥이라면 소파는 들보였다.”

▲ 차상찬 선생 부부 묘소.분당 메모리엘파크 소재.애석하지만 이곳은 결코 명당이 아니다.
▲ 차상찬 선생 부부 묘소.분당 메모리엘파크 소재.애석하지만 이곳은 결코 명당이 아니다.
어린이 날을 만든 주역은 소파 방정환이지만 그와 더불어 어린이 운동과 어린이 날 제정에 힘쓴 주역이 차상찬이란 사실 역시 아는 이가 드물다.집에 쌀 한 되 사가기 조차 힘든 그의 삶이었다. 부인 홍여사는 남편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불평 한마디 없이 도왔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아버지는 책만 알았지 살림을 돌볼 줄 몰랐으니 너만은 하루 밥 세끼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선생은 “왜놈이 망해서 조국이 광복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그래서인가,광복을 맞이한 이듬 해 1946년 2월 20일 눈을 감으니 향년 59세였다.

선생의 활동상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선생이 남긴 많은 유고(遺稿)들이 산일(散逸)되자,지역언론이 차상찬을 알리기 시작했다.그 결과로 선생은 지난 2004년 강원도 ‘문화인물’로 선정되었고 201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한 기업인은 2016년에 춘천 동면 달아실 미술관 4층에 ‘청오 차상찬 잡지 기념관’을 개관하고 선생이 발간한 많은 잡지와 육필원고 등을 전시하고 있다.

선생이 태어난 동네를 찾아가니 선생의 묘소는 작년에 다른 곳으로 이장(移葬)해 갔다고 한다.이장한 저간의 사정은 모르지만 차선생의 묘소가 흉지에 자리했던 것도 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풍수적 판단이다.지난 달 12일 한림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청오 차상찬 탄생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구순(九旬)이 넘은 청오 선생의 아들도 참석했다.차 선생의 묘소를 분당의 공원묘원으로 모셨다는 전언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강원도 사람이다.강원도에서 뼈가 굵고 살이 컸다.항상 강원도를 더 사모하고 더 사랑하였다”라고 했던 차상찬 선생.선생을 고향의 길지(吉地)로 모셔오는 것이 청오 차상찬의 선양에 출발일 것이라는 춘천 토박이의 생각이다.
▲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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