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꺼먹다리
다리이름 콜타르 입힌 검은 상판서 유래
1945년 화천댐 건설 주요 수송로 역할
6·25 전쟁 흔적 남아 근현대사 고스란히
1945년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만들어진 이 다리에는 군부대 안팎에서 회자되는 전설이 있다.군대에 갈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양 끝에서 출발해 한 가운데서 만나면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다.때문에 면회 온 애인과 마주보고 다리를 걷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다리 상류 쪽 ‘처녀고개’에는 더 오래된 전설이 있다.소나무에 버선목을 걸어놓고 장원급제하러 떠난 님을 기다리던 처녀는 10년이 지나 더러워진 버선목을 바꾸려다 벼랑에서 떨어져 세상과 이별한다.장원급제해 돌아온 님은 벼슬도 마다하고 처녀의 무덤 옆에 남아 농사를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간직한 꺼먹다리에는,전설이 아닌 사실이어서 더 아픈 우리의 근현대사가 새겨져 있다.일제 강점기의 안타까운 역사와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전쟁 당시 꺼먹다리 일대에서는 화천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한 남북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일진일퇴의 살육전으로 수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다리 아래 강은 핏빛으로 물이 들었고,중공군과 북한군,아군의 시체가 산을 이뤘다.아군이 북진할 땐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내며 진군을 했다고 한다.그러나 꺼먹다리는 건재했다.남북 모두 이 교량을 전략적 요충지로 판단하고 치열한 전투 중에도 폭파하지는 않았다.그래서 콘크리트 교각엔 총탄 자국만 남아 있다.
상상도 못할 잔인한 전투는 끝이 났다.이름을 알 수 없는 어린 병사들의 비명과 아우성도 사라졌다.더 이상 총성도 들리지 않는다.오직 낡은 교각에 의지해 버티고 있는 늙은 다리만 외롭게 서 있다.마치 그때의 엄청난 일들이 사실이 아닌 전설이기를 바라는 듯 침묵하며 서 있다.
이수영 sooyoung@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