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정순   원주시의원
▲ 용정순
원주시의원
6월항쟁 30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린 지난 7일 춘천에서 87년 춘천지역의 6월 항쟁 동영상을 보았다.빛바랜 사진 속의 더벅머리 청년은 이제 머리숱이 듬성한 중년 사내로 바뀌었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후배는 맨 앞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진압하는 경찰을 향해 우산을 흔들던 아저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30년 세월은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속을 내달리던 학생들을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둔 부모로 만들었다.

6월 민주항쟁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독재를 연장하려고 했던 군사정권을 사실상 굴복시키고 대통령 직선제라는,정부를 국민의 손으로 뽑는 민주공화국을 안착시킨 한국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발단은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김근태 고문사건,부천 성고문 사건 등으로 폭압정권의 반도덕성을 드러냈던 군사정권은 박종철군을 고문치사한 것도 모자라 축소·은폐 조작하였다.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4·13 호헌 조치를 기점으로 한계점이 극에 달했다.전국적으로 저항의 불길이 확산되는 가운데 춘천지역도 예외일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총학생회 간부로서 6월 항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매번 집회를 할 때마다 100여명 모이기 힘들던 학생들이 어느 순간 수천명으로 불어났다.바로 앞에서 시위를 하던 학생이 머리채가 잡혀 끌려 나가도 무심히 밥을 먹던 학생도,세상 일에는 무관심했던 도서관 학생도,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냉소적이던 학생도 어느 순간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주먹을 휘두르며 구호를 외쳤다.이들은 인도 블럭을 깨 행진을 가로막던 경찰에게 던지고 팔호광장에서 명동로터리에 이르는 거리 한복판에서도 최루탄 연기를 뚫고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치고 있었다.퇴근길 시민들도 민주정부을 쟁취해야 한다는 연설에 박수를 치고 잡혀 가는 학생을 구하기 위해 경찰과 맞섰고,상점 주인은 달아나던 학생들을 숨겨주었다.핸드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명동으로’라는 약속 하나로 거대한 강물처럼 향하던 학생들의 물결과 팔호 광장을 가득 메운 학생·시민들은 춘천 역사상 전무후무한 집회 참가 인원이었다.전국에서 도청을 점거한 유일한 지역이기도 했다.

세상이 뒤집어 질 것 같았지만 학교 측은 조기방학으로 학생들을 흩어지게 하고 주요 동력을 잃은 춘천의 항쟁이 지리멸렬해지던 6월29일.수배령이 떨어져 숨어 있던 친구의 자취방 텔레비전으로 군사정권의 6·29 선언을 보며 나는 선배가 빌려 온 트럭 적재함에 냉장고 상자를 싣고 그곳에 몸을 숨겨 춘천을 빠져 나갔다.87년 나의 6월이었다.훗날 사람들은 이를 ‘6월 민주항쟁’이라고 불렀다.

6월 항쟁을 많은 언어로 의미를 부여하지만 나의 경험은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냉소적이고 비굴하기만 한 것 같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불의한 권력에 맞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와 맞설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 그리고 역사에 대한 낙관을 갖게 만들었다.때론 적폐세력들에 의해 국정농단이 이루어지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기에 절망스럽기도 했다.그러나 87년 6월 항쟁이 그렇듯 2017년 촛불혁명은 또 다시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한 목소리로 외치고 함께 행동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다.6월이 촛불로 피어났다.시민권력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민의 뜻에 반하는 불의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을 두 번이나 경험한 나는 참 행복하고 멋진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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