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규   강원신용보증재단 이사장
▲ 이남규
강원신용보증재단 이사장
평창엔 원초적 평화가 있다.그 상징은 메밀밭이다.해마다 9월초 평창 봉평에 가면 드넓은 메밀밭을 본다.이효석을 기리는 문화제가 이곳에서 열리는 것을 기념하고,관광객 유치차원에서 벌써 수년전부터 30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을 시행해오고 있다.이 메밀밭을 구경하면 어김없이 이효석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명문장을 되뇌곤 한다.‘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소설이라기보다는 그대로 원초적 평화를 노래한 한편의 시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평창’과 북한의 ‘평양’을 종종 헷갈린다고 한다.발음도 비슷한데다 평창이란 이름보다는 평양이란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이라고 한다.올림픽유치초기만 하더라도 평창과 평양을 헷갈리는 IOC위원이 있는가 하면 2014년엔 평창에서 열린 유엔식물다양성총회에 참석차 온 아프리카 케냐인이 평양으로 간 해프닝도 있었다.이 때문에 최문순 지사는 국제대회가 있을 때마다 ‘평창은 평화와 번영을 뜻한다’는 지명유래를 설명하며,평창과 평양을 헷갈리지 말도록 강조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을 쓴 곳은 평창이 아니라 평양이라고 한다.지금도 평창 봉평에 가면 이효석 생가와 더불어 5년간 머물며 집필활동을 했던 붉은 벽돌집에 푸른 담쟁이덩굴이 덮인 평양의 ‘푸른집’을 재현해 놓았다.그러고 보니 ‘평양(平壤)’도 한자 뜻을 풀어보면 평화로운 땅인데,현재상황은 정반대인 동토(凍土)가 됐다.

내년 2월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펼쳐지는 평창올림픽이 이제 7개월 앞으로 다가왔다.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 돼야 한다.대선 분위기에 묻혀 크게 이슈화 되진 않았지만 지난 4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북한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 출전했다.동시에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은 강릉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에 참석했다.역시 스포츠 경기는 악조건에서도 긴장을 완화하는 좋은 이벤트임을 재확인한 계기였다.지금 남북관계는 북한의 연쇄 도발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긴장국면이다.강력한 대북제재가 분명 필요하다.그러나 한편 완화도 꼭 필요하다.팽팽한 긴장국면의 지속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올림픽정신은 평화다.내년 올림픽이 절호의 기회다.

대통령도 지난 대선당시 “평창올림픽은 남북관계를 개선할 단초가 될 수 있다”며 평화올림픽을 강조했다.따라서 IOC를 설득,북한을 참가시키는 국가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이 같은 노력이 성사된다면 남북간 분위기는 금세 달라질 수도 있다.이를 바탕으로 우리 강원도의 염원대로 금강산 관광재개,남북공동어로구역 지정,철원평화산업단지조성,고성남북교류촉진지구 설치 등 남북간 교류의 물꼬를 틀수 있을 것이다.지난 대선직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문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한국,달빛정책의 시대로 돌입하다’는 기고문을 실었다.과거 햇볕(sunshine)정책을 계승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문대통령의 성(姓)영문표기인 Moon(달)과 선샤인을 합친 단어를 쓴 것이다.강원도의 노래 가사 중 ‘아침 해 먼저 받은 우리 강원도…’라는 대목이 있다.이제 ‘환한 달빛 먼저 받은 우리 강원도~’가 됐으면 한다.소금을 뿌린 듯한 봉평 메밀밭의 흐뭇한 달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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