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준   춘천지법 기획공보 판사
▲ 이석준
춘천지법 기획공보 판사
왜 법조계를 두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걸까.일반인들이 보통 거론하는 것으로 전관예우 논란을 들 수 있다.그러나 필자나 동료 판사들은 변론을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면서 전관예우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뿐더러 제도적으로도 많은 법원에서는 배당 규정을 따로 두어 현 재판부와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인이 선임되는 경우 담당 재판부를 교체하기도 한다.따라서 예전에 어땠을지 잘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모든 법원 판사들이 전관예우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문제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법조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이른바 값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있어,소송당사자들의 경제적 강약에 따라 그 선임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실력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하려면 많은 수임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있는 서민들은 경험있고 전문성이 풍부한 변호사들을 고가로 선임하는 것은 쉽지 않다.국가에서는 국선변호제도, 소송구조제도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송당사자들에게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해줌으로써 법률적 무기의 평등을 최대한 뒷받침 해주려한다.그럼에도 국가에서 이들에게 ‘값비싼’변호사를 선임해줄 의무는 없고 나라의 예산이 그렇게 풍족하지도 않다.그렇다면 고가의 변호사를 선임한 부유한 소송당사자들이 아무래도 승소하거나 무죄판결을 받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을 수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약간의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필자는 이를 넘어서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요인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고 싶다.예를 들어 수많은 직원들을 두고있는 기업의 소유주 또는 부유층이 만약 사기,배임,폭행,뇌물공여 등 형사상으로 문제될 수 있는 행위를 하고자 한다면 직접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하거나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되면 부하직원들이 없는 일반 서민들이 직접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경우와 비교해 볼 때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입증하거나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아무래도 직접 위법한 행위를 하는 것보다 공모했거나 지시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특히 지시·수행단계가 1,2단계가 아니라 몇 단계(가령 회장-부회장-사장-부사장-이사)에 걸쳐져 이루어지는 경우 각각의 지시·공모 여부를 입증해야하는 만큼 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훨씬 어려워진다.여러 단계의 지시·공모라는 연결고리 중 어느 하나라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이는 증명이 부족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이를 명시적으로 지시한 것이 아니라 묵시적으로 이와 같은 명령이 이루어지거나 부하 직원이 소유주 등의 이익을 위하여 알아서 이를 행하였고 윗선에서는 이를 묵인한 것에 불과한 경우는 더더욱 상황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경제적 차이로 말미암아 불합리한 판결이 이루어지게 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매우 애를 쓴다.형사소송법상 형사처벌은 엄격한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도에서 법원에서는 제출된 증거를 가지고 간접적인 정황을 추출한 후 지시·공모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거나 그와 같은 사건은 매우 복잡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재판부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한 심리를 조금 더 세밀하고 엄격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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