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미 현 문화체육담당 부국장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는 아침이면 자욱한 산성안개 속을 헤매기 십상이다. 인공호수에서 뿜어내는 짙은 안개 때문에 15층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도 개운하게 아침 봄햇살을 받기 어렵다. 오전 10시는 넘어서야 도심에 무겁게 내려앉은 산성안개가 걷히기 때문에 출근길 역시도 잿빛 땅에 잿빛 하늘이어서 괜히 우울하게 한다.
 4월 황사 시즌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게 요즘 춘천사람의 삶이다.
 그런데 어떤 춘천사람은 그런 안개를 마시지 않고 우중충한 기분을 느낄 일이 거의 없는지 한국수자원공사측에‘인공댐을 지어 물을 줘서 고맙다’면서 과거 10년 치 물 원수사용료까지 합쳐서 지불하겠다고 한다.
 토박이 어른에게 듣기로는 춘천은 합수머리여서 원래부터 물이 많았다는데 말이다. 더욱이 물이 자원으로 인식되면서 이제는 영구적인 '수리권'으로 활용할 기회가 오고있는데, 일부 식자층에서는 원수 사용료 지불 당위성이 거론되고 있다.
 대관령 너머에 있는 내 고향 강릉에서는 강릉시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제를 사시사철 보여줄 5월 준공예정인 강릉단오타운 운영문제를 취급하면서 이곳서 전승과 공연을 펼쳐갈 전수자를 일찌감치 협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상설공연장과 야외무대, 전수관 등으로 꾸며진 단오타운을 실제 활용할 이들이 바로 현장의 전승자들인데, 되레 공무원과 상공인 등이 모여 ‘자격이 있네, 없네’'산하 단체가 돼야하네 어쩌네’하며 주객을 바꿔놓았다.
 강릉단오제를 세계적인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하겠다고 법석을 떨면서도 정작 이 무형문화재를 전승해야될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해도 되나보다.
 이틀 전 이같은 모순을 지적하는 보도를 하자 지역의 일부 '높은 사람'은 불편한 안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내부 문제를 누가 발설했는지 찾아내려고 눈초리가 매섭다는 후문이다. 아마도 기사의 어떤 문구가 감정을 건드려 본질적 문제를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0여 년 전 일이긴 하나 강릉단오 하면 떠오르는 뒤안길의 한 풍경이 있다. 음력 5월 5일 강릉단오제에 앞서 준비 과정 취재를 위해 무격 전승자들이 모인 곳을 찾았다.
 이들은 강릉시 홍제동 눅눅한 개인집 지하방에 모여 단오굿청을 화려하게 장식할 지공예 작품을 어깨를 꾸부리고 맨바닥에 앉아 퀭한 눈으로 바쁘게 손을 놀려댔는데, 그 때의 시큼한 곰팡내와 눅진함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빈 동사무소 건물을 월세 10만원에 빌려 전승하는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한자 사용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나오는 우화가 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둘러앉아 한자를 읽고 있었다.
 막내가 먼저 읽었다.
 ‘월, 화, 수, 목, 김, 토, 일’
 그러자 둘째 아들이 손을 휘휘 저으며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읽었다.
 ‘월, 화, 수, 목, 금, 사, 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맏형이 손가락으로 글자를 또박또박 짚어가며 외쳤다.
 ‘월, 화, 수, 목, 금, 토, 왈’
 자식들이 벌이는 광경을 지켜본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무지해서야, 어서 건넌방에 있는 왕편 가져왓’
 한심하게 여겨지는 네 부자의 이야기는 토(土)와 사(士), 일(日)과 왈(曰), 옥(玉)과 왕(王)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한자를 잘 모르는 세태를 꼬집은 우스갯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틀 안에 갖혀 옥편을 두고'왕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지, 지역사회에서든 작은 조직에서든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떠올려봐야할 우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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