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주간에 즈음하여

▲ 서영주   강원도 여성가족연구원장
▲ 서영주
강원도 여성가족연구원장
몇 년 전부터 어머니의 삶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궁금해졌다.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사회에 발을 내딛은 우리 딸들의 삶이 나와 다를 것이듯이 나의 어머니 또한 나와 다른 시간,다른 세상의 삶을 살아오셨을 것이다.내가 자라면서 보아오던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그녀의 생애에 켜켜이 쌓여있을 지난 삶은 어떤 것이었는지 듣고 싶었다.최근 부모님을 모시고 자동차 여행을 가는 길에 어머니의 고향을 잠시 들렸다.자연스럽게 고향마을에서 보낸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일제강점기를 살아오신 어머니는 일본군이 처녀들을 강제로 차출해서 위안부로 전쟁터로 보내던 시절을 겪으셨다.집으로 들이닥친 일본군을 피해 외할머니께서 어머니와 이모를 장독에 숨기셔서 겨우 피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친다고 하셨다.여성들의 삶에는 우리 사회의 지난 역사가 녹아있다.파견 간호인력으로 독일로 떠나셨던 큰집 고모,당시 흔치 않았던 미혼모로 딸 하나 데리고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신 큰고모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집안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이고 시대의 역사였다.

비단 이 같은 시대상황과 맞물린 여성의 삶은 우리 집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강원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이 펼쳐져 있다.그러나 이 분들의 생활이나 삶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태백지역 여성광부의 선탄부 이야기,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강원도 해녀의 이야기,무명으로 사라지고 있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남아있다.이러한 역사들이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 나가는데 있어 크나큰 손실이다.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삶은 기억되기보다 쉽게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역사가 남성들의 관점으로 기술되는 히스토리(History)뿐만 아니라 여성의 삶이 여성의 목소리로 드러낼 수 있는 허스토리(Herstory)로 남겨지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보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얼마 전 시노즈카 다카시 미국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의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망언은 또다시 우리를 분노케 한다.이번이 처음이 아니듯 이러한 망언은 계속 되풀이 될 것이다.문헌기록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본의 강제동원과 성폭력은 피해자들의 구술증언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이제 위안부 역사를 증언한 할머니들은 겨우 서른여덟분만이 생존해 있다.이미 고령이 된 생존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현실이 더욱 왜곡되고 조작되어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올해 22회를 맞은 양성평등주간(7월 1∼7일)에는 강원도 범여성계가 똘똘 뭉쳐 다양한 행사들을 펼칠 계획이다.특히 오는 7일 강원도청에서 열리는 ‘강원여성 생활사 포럼’은 근·현대 강원도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논의하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번 ‘강원여성생활사 포럼’을 시작으로 강원 여성의 삶이 복원되고 기록되어지는 일에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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