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
▲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전해 준 책을 이어받은 서남아시아 지역과 비교하면 중세기간 내내 신학에 집중한 유럽의 학문 수준은 훨씬 낮았다. 조상들의 학문적 업적을 무시하고 있는 사이에 내 조상의 유산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서남아시아 지역에 뒤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성지를 탈환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고,그로 인해 14세기부터 서서히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은 점점 더 강한 운동으로 일어났고,이를 인간중심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즉 르네상스라 한다.

이 때를 전후하여 고대 그리스에서는 허용되었으나 오랜 기간 허용되지 않던 인체 해부가 허용되기 시작했다.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인체해부를 시작했으나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의학적 발견은 그냥 묻히곤 했다. 2세기에 동물 실험을 토대로 정립한 로마의사 갈레노스의 책에 담긴 지식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여겼으므로 사람의 해부 과정에서 갈레노스의 책에 실린 내용과 다른 내용이 발견되면 해부를 통해 발견한 사실이 특정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변이 또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이 몸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갈레노스의 책은 옳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연구에 임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약 200년간 지속적인 인체 해부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했지만 이를 무시하는 일이 반복되다가 1543년에 베살리우스가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표한 후에야 사람들이 학문을 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관찰하고 실험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과거에 씌어진 어떤 자료든 진리로 받아들이기 전에 내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필자는 대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말을 흔히 하곤 한다. 의심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비타민 몇 mg을 먹는 것이 가장 좋은가에 의문을 가진다면 현재 교과서에 실린 일일권장량은 언제 누가 어떤 방법으로 알아낸 것인지를 확인하고 그 과정을 검증해 봐야 한다. 지금보다는 학문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 과거의 어느 순간에 측정한 것을 수십년 이상 그대로 믿어오고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그다지 중요한 업적이 아니라는 비판에 대해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워보라고 했다.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는 달걀을 깨어 세워놓음으로써 해 놓고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이를 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함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달걀을 깨지 않고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달걀을 세워 놓은 사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에 얽힌 이야기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이 달걀을 깨지 않고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고정관념을 만들어 버렸다.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고,익히 알려진 일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는 것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타인보다 나을 게 없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일을 이룰 수 있고,창의적인 도전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