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북방의 이민족 침략을 막겠다고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았다.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리는데 지선(支線)까지 포함하면 장장 5000~6000㎞에 달한다.막대한 국고와 노동력이 동원된 이 대역사가 외침을 막는데 과연 그만한 기여를 했는가.기본적으로 이런 방벽은 방어적 수단이라는 한계를 지니는데다 북방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이후 이런 군사적 가치가 아예 사라지고 만다.

담장을 높이 쌓는 것만으로 도둑을 막기 어렵다.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충분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우선 방벽을 쌓는데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장벽을 쌓는 것은 당장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는 하겠지만 결국엔 스스로를 가두는 역효과를 수반한다.작게는 한 가정과 한 마을을 지키는 일이 이러하고,항차 한 나라의 지키는 일이 그러할 것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사교에 보루가 많은 것은 경대부의 치욕이요(四郊多壘 此卿大夫之辱也),땅이 드넓고 거친데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또한 사의 치욕이다.(地廣大荒而不治 此亦士之辱也)”라는 대목이다.내치와 외교가 서툴면 외구(外寇)와 내란(內亂)이 그치지 않고 성벽을 높이 쌓을 수밖에 없는데,이게 다 정치와 국사를 맡아보는 경대부와 관리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외곽에 성벽을 높이 쌓는 것은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외교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얘기다.사교에 보루를 쌓는 것은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변방의 수비를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일이 될 것이다.그러나 군비경쟁은 상대적인 것이고 이런 무비(武備)만으로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특히 안보를 둘러싼 환경과 개념이 크게 달라진 오늘에 이르러선 말할 것도 없다.

비군사 수단을 포괄하는 ‘종합안보(comprehensive security)’의 중요성이 점증한다.세계질서와 연동된 한반도의 환경도 안보의 새 패러다임을 요구한다.남북 관계의 바깥에 미국과 중국이 맞서고 그 뒤를 한·미·일 북·중·러의 또 다른 외연이 감싼다.정답이 없는 복잡계다.어제 정부가 북한에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전격 제안했다.대화는 보루를 허무는 게 아니라 무형의 보루를 쌓는 일이 될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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