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기세가 무섭다.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중복 대서를 지나 입추로 다가서는 절기가 오히려 머쓱하다.더위에 지쳐 오갈 데 없는 심신.문득, 선현들의 피서법이 궁금하다.조선 정조 때 학자로 역사에 조예가 깊었던 유득공(1748 ~1807)은 시 한수를 읊어 더위를 물리쳤다.‘비 지나자 개구리 울음소리 못에 벌써 가득한데/지붕위의 나뭇가지엔 푸른빛이 더욱 짙어 지네/서늘한 구름 반 조각에 서너 개 별이 반짝이는데/갈대 밭 비스듬히 걷고서 홀로 누워 있노라’.구름 반 조각이라…절로 더위가 가신다.

서거정(1420년~1488년)은 더위를 정면으로 겨눴다.요샛말로 직격!그의 시,‘수박’을 통해서다.‘수박을 쪼개자 둥근달이 갈라진듯/뼛속까지 서늘해져 깜짝 놀랐네/서늘한 기운 벌써 깨달았으니/어디 가서 더위를 피할 것까지 있겠나’.수박 한 조각이면 더위를 물리칠 수 있으니 구태여 피서를 떠날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대단한 수박 예찬!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0년 묵은 소갈병이 수박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낫는 듯하다.약재보다 수박이 오히려 낫다”고 했다.수박을 당뇨병 치료제로 확장한 것이다.

조선시대 ‘삼복더위’ 피서법도 재밌다.조선후기 문신 윤기(1741∼1826)는 ‘무명자집’에서 “성균관유생들에게 초복에는 개고기 한 접시,중복에는 참외 두 개,말복에는 수박 한 개를 줬다”고 썼다.고려 말 학자 이색(1328∼1396)은 ‘수박을 먹다’라는 시에서 ‘마지막 여름이 곧 다해 가니/이제 수박을 먹을 때가 되었다/…/ 하얀 속살은 마치 얼음 같고/푸른 껍질은 빛나는 옥 같다’고 했다.옛부터 수박을 ‘피서 음식’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수박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됐는지는 확실치 않다.대략 13세기쯤으로 점쳐진다.다만,허균(1569∼1618)은 그의 저서 ‘성소부부고’에서 “충주에서 나는 것이 상품이며, 원주 것이 그 다음”이라고 한 반면,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1814∼1888)은 ‘임하필기’에서 “경기의 석산과 호남의 무등산, 평안도의 능라도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수 세기가 훌쩍 지난 요즘은 누가 뭐래도 ‘양구 수박’이 대세다.1통(12㎏)에 2만5000원으로 전국 최고가.양구에 가면 10년이 젊어진다는데 수박까지 더해졌으니…이래저래 복 받은 고장이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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