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위가 높으면 이목이 가려진다’는 여곤의 말이 떠오른다.누릴 것 다 누린 그야말로 군의 고위직에 오른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과 그 부인의 공관병 수퍼 갑질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수장의 잘못된 갑질은 기업의 존폐를 흔들기도 하고 평생 쌓아온 명예를 잃게도 하는데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정신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성공을 향해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한 상태에서 보상 욕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한 즉 번아웃 신드롬 때문이라고 말한다.

갑질이라는 행위에 비해서 이 분석은 너무 가볍고 고상하다.갑질 장본인들의 ‘부족한 인격’이 갑질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는 생각이 훨씬 자연스럽다.저항할 수 없는 처지의 약자에게 지속적으로 갑질을 자행했다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교만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악의적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라는 책은 ‘사과에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는 논문을 소개한다.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늦은 사과는 하기싫은 사과를 겨우 등떠밀려 하는 것 같고 너무 빠른 사과는 사건을 빨리 종결짓고 끝내려는 듯 해 사과의 마음을 잘 전달하기 쉽지 않다.이래 저래 쉽지 않은 사과지만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인 것 그리고 과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진실된 회개를 해야하는 태도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제 박 사령관 부인이 ‘아들같은 마음으로 대했는데 상처가 됐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아들같은 마음’도 웃기지만 ‘상처가 됐다면’은 더 어이없다.자신의 행위가 뭔 상처가 되냐는 반문과 다름없이 들리기 때문이다.도비순설(徒費脣舌)은 입술과 혀를 헛되게 써 아무 보람이 없다는 말이다.진심없는 사과도 도비순설이다.그들 부부가 법에 위배되지 않는 행동이었기에 괜찮다고 자위한다면 이는 오판이다.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중형감이기 때문이다.각자가 남긴 발자국은 다른 사람의 길이 되기에 조심해야한다고 김구선생은 말한다.박사령관 부부의 갑질은 군에게도,개인에게도 참담한 오욕의 발자취이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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