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난 요 며칠 아침저녁의 날씨가 달라졌다.여전히 낮 기온이 30도 중반을 오르내리지만 절기를 속일 수는 없나보다.덥다 덥다고 해도 그 예기가 이전 같지 않음이 느껴진다.밤낮을 가리지 않고 턱턱 숨이 막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던가.저도 모르게 한 밤중에 걷어 차버렸던 얇은 이불을 끌어당기게 된다.자연의 변화는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라 몸이 한 발 앞서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창문너머로 외곽의 도로를 따라 아침저녁 운동에 나선 이들의 발걸음도 달라 보인다.올 여름 40도의 턱밑까지 차오르기를 몇번이던가.유례없이 뜨거웠던 한 계절을 인공냉방에 의존해 난민처럼 보낸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어제는 여름 내내 발을 끊었던 아침운동을 나섰는데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까지 한결 가볍다.하루하루 달라지는 이 미세한 변화를 즐기는 것도 이 무렵을 사는 재미다.

아침저녁 30분 혹은 1시간 틈을 내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어디서나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아파트단지를 휘돌아 나오자 마을 텃밭 농막부근엔 일찍 산책을 마친 이들이 오종종히 서 있다.잠깐 오이며 가지며 상추며 갓 따낸 채소를 사고파는 미니 장이 서는 것이다.얼마 전 이곳엔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즐겨 찾던 야산이 뭉텅 잘려나갔다.

지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저 국사봉의 팔 다리가 야금야금 더 잘려나갈 것이라 생각하면 비감이 든다.산자락에 접어들면서 오래 전 발을 끊은 이발소 주인과 일별하고 정상에 올라 선 몇 해 전 은퇴한 옛 스승도 뵈었는데 눈인사만으로도 안부가 다 통한다.누군가의 휴대용 라디오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아침뉴스를 귀동냥하기도 하고 오가는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오늘의 민심을 읽는다.

돌아오는 길엔 공직 은퇴 후 노변의 작은 농장을 일구는 지인이 있는데 오늘은 쉬는 모양이다.옆 동네에 사는 중년의 공무원 친구는 이제 서야 눈을 비비며 길을 나선다.몇 주 혹은 몇 달에 한 번 길에서 예고 없이 만나 밀린 안부를 주고받는 그다.신문에 보니 “오래 앉아있으면 우울증 위험이 높아진다”하고 “매일 30분을 걸으면 치매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하루 30분 걷는 이 재미를 어찌 마다하랴!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