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누우떼의 이동 장면이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새로운 먹이를 찾아 떠나는 누우떼의 행렬은 그만큼 강렬하다.아프리카의 평원을 가로지르며 대오를 불려나가는 모습은 그대로 거대한 강을 닮았다.어디선가 작은 물줄기가 모여 하천을 이루고 강을 만들어가듯 누우떼도 이동 중 세를 불려가며 평원을 굽이쳐 흐른다.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급하게 그들의 바다로 향한다.

그들이 가 닿게 될 바다는 바로 새로운 초지(草地)가 된다.누우(Gnu)는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로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다.주로 탄자니아 잠비아 케냐를 비롯한 동부와 남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앞으로 휘어진 뿔과 갈기와 꼬리에 긴 솜털이 있어 뿔 말이라고도 불린다.30년 정도를 사는데 덩치는 얼룩말보다 조금 작고 풀과 나뭇잎 꽃을 먹고사는 초식 동물이다.

이 대장정의 절정은 강을 건너는 것이다.이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목적지에 갈 수 있는데 그러나 그 강엔 악어 떼가 기다린다.이 광경이 시인의 눈에 그대로 포착된다.“건기가 닥쳐오자/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처절한 도강(渡江)을 그린 시가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이다.

이 생사(生死)가 부딪히는 시간,물러나 사는 길이 없다는 걸 누우들은 안다.“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그래서/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모든 살아있는 것은 모든 죽어가는 것의 덕분이라고 한다.생명의 바탕은 죽음이요 존재의 기반은 소멸이란 얘기다.“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그중 몇 마리는 저 강둑이 아닌/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누우들은 언젠가 다시 악어 떼가 우글거리는 강과 마주해야 한다.죽은 자의 헌신과 산 자의 기억이 종족을 살린다.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무명의 누우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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