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성의   6·25참전유공자
▲ 송성의
6·25참전유공자
1945년 8월15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지원으로 우리는 해방이 됐다.그러나 강대국 얄타회담에서 우리 국토에 38선을 긋고 남과 북이 대치상태에서 북에 진주한 김일성(김성주)은 스탈린의 지시 하에 군비를 확충하고 6·25를 남침의 날로 정하고 도발을 강행해 그날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구한말 동학혁명이후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의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험난한 국제정세의 파고 속에서 국제 정치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현명한 전략으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이 고통을 당한 예가 자주 있었다.단적인 예로 구한말 정치지도자들의 정치 실패는 이후 고통스러운 역사로 이어졌다.물론 조선에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꿰뚫어 보고 현명하게 대응하여 기회를 잡으려고 한 군주도 있었다.오늘날 실리외교 현실주의 외교를 펼쳤다고 재평가 되는 광해군이 대표적이다.임진왜란이 끝나고 17세기 초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날로 복잡해 졌지만 광해군은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국익을 앞세우는 실리 외교를 펼쳤던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의 위기는 극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북한은 한 달이 멀다하고 핵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강대국들은 한반도를 두고 세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중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의 연대를 공고히 하고 광해군 시대의 경험을 지혜롭게 복기해야 한다.또한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 구한말의 부끄러운 정세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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