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지난주 막을 내린 화천의 대표적인 여름축제인 쪽배축제.축제의 개막을 알린 야외 인형극 낭천별곡의 테마는 ‘복 받으러 떠난 엄청이’였다.‘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가 사는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공연에는 주민과 군 장병 등 100여 명이 참여해 화천의 역사와 재미가 어우러진 의미 있는 무대를 선보였다.배우와 관객,주민들이 함께 박수 치고 환호하며 여름밤의 낭만을 연출한 시간이었다.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군민을 하나로 엮은 이 공연을 기획한 사람들은 서울에서 활동했던 젊은 예술인들이었다.지금은 지역에 둥지를 틀고 있는 ‘화천사람들’이다.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생 8명이 창단한 ‘뛰다’는 2010년 화천으로 전 단원과 가족이 이주했다.상업화에 물든 대도시에서의 창작환경은 늘 한계에 부딪혔고,무엇보다 예술이 단순 소비의 대상이 아닌 삶과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 매개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뛰다’ 맴버들은 화천 전체를 예술이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에 주둔하는 군 장병과 어린이,주민들과 워크숍,연극캠프를 진행하며 지역과 어우러진 예술단체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화천으로 온 사람’들 중에 또 한 명 주목을 끄는 사람은 간동면에서 전업농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스물아홉 살의 송주희 씨다.지금은 결혼을 했지만 아직 ‘처녀농부’라는 타이틀이 더 익숙한 송 씨는 고교 때부터 고향인 화천을 떠나 서울생활을 했던 도시 여성이었다.원두커피를 뽑아들고 빌딩숲을 누비던 그녀였지만 서울생활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그녀에게 도시는 꿈과 희망의 땅이 아니었다.경찰공무원 준비를 하던 중 어머니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지금 그녀에게 고향 화천과 논밭은 희망이고,또 위안이다.지난해 본지에 소개된 이후 각종 매체에서 화제의 인물로 다뤄지는 그녀는,도시의 세련 대신 거름 냄새 나는 고향의 논밭을 선택해 스스로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극단 ‘뛰다’와 송주희 씨가 젊은 화천을 만들어가고 있다면,김응수 씨는 화천 농업의 산업화를 개척하는 경우다.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지난 2004년 파로호에서 낚시를 하다 화천의 매력에 빠졌다.도내에서 블루베리 농장이 한 곳도 없던 시절,그는 간동면에서 본격적인 블루베리 재배를 시작했다.전세계 300여개의 품종 중 지역의 기후,토양 조건 등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50종의 품종을 정해 육묘를 수입,지역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찾아냈다.오늘날 화천블루베리 농업의 토양을 만든 장본인인 그는 블루베리 와인과 식초,음료 등 가공제품을 생산해 수출까지 하는 등 농장 기업화에 앞장서고 있다.한편으로 재직시절엔 ‘도시 5일 농촌 2일’,은퇴를 앞두고는 ‘도시3일 농촌4일’의 귀촌 모델을 선보였으며,은퇴한 요즘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화천에서 보내고 있다.

극단 ‘뛰다’ 멤버들과 송주희씨,그리고 김응수 교수처럼 화천으로 온 사람들의 귀촌 이유와 성격은 각각 다르다.또 화천으로 온 사람들이 모두 성공적인 귀촌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이들 ‘신 화천인들’이 지역에 새로운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확실하다.처음엔 어색하고 거북스러워했던 주민들도 지금은 마을 어귀 정자에서 이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사람 사는 마을,정감 있는 동네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 화천을 선택한 사람들의 경우를 보듯이,귀촌의 패턴은 점점 다양화하고 있다.그리고 진화하고 있다.정책 당국도 획일화된 귀농정책 대신 변화하는 귀촌 추이에 맞는 섬세한 정책을 개발해 나가야 할 때다.그래서 ‘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가 사는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주민에게도 귀촌인에게도 심어주길 바래본다. 이수영 화천주재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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