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의 태재(大宰) 화보독(華父督)이 길을 가다가 사마(司馬) 공보가(孔父嘉)의 처에 반한다.그 미모에 취해 “똑바로 쳐다보고 지나치고 난 뒤 되돌아보기까지 하면서 ‘아름답고 곱다’고 말했다”라는 기록이 전한다.결국 그 미혹에서 헤어나지 못해 남의 여인을 빼앗아 비난을 불러들이게 된다.고금을 막론 고개를 돌려세우는 게 미인의 힘인가 보다.꼭 외모나 이성간의 끌림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전에 춘천시 서면에 문을 연 붓 박물관에 들렀다가 붓글씨 체험을 했다.격자의 글 판에 물을 먹물삼아 써 보는 것인데 어쩌면 중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한 번씩 해 봤음직하다.한국에서 대학원을 갓 마친 중국유학생이 동행했는데 멋들어지게 시 한 수를 써 내려 간다.“曾經滄海難爲水(증경창해난위수) 除却巫山不是雲(제각무산불시운)”! 당나라 시인 원진(元鎭·779~831)의 ‘이사(離思)’라는 칠언절구였다.
“일찍이 바다를 보고나니 강물은 물 같지 않고,무산의 구름을 보고나니 뭇 구름은 구름이 아니더라”는 뜻이다.집에 돌아온 뒤에 그 아귀를 맞춰 보았는데 “取次花叢懶回顧(취차화총라회고) 半緣修道半緣君(반연수도반연군)”이라는 구절이 그 뒤를 이었다.“아름다운 미인이 줄줄이 지나가도 돌아보지 않는 것은,반은 도를 닦은 때문이고 나머지 반은 내 마음 속에 그대가 있기 때문이 라네”라는 내용이다.
소학 때부터 붓을 잡고 시를 외게 하는 중국 식 교육의 위력이 아닌가 싶었다.붓을 다루고 문장을 써내려가는 솜씨가 그만큼 거침이 없었다.시를 외고 붓을 잡는 것에 점수를 쳐 주지 않는 곳에선 어림없는 얘기다.그가 마저 쓰지 못한 문장엔 백거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시인의 사랑이 있었다.일찍 여읜 아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그 어떤 화려한 꽃도 흔들지 못하는 마음속의 미인이었던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