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운명이 참 얄굿다.올해 초,AI(조류인플루엔자) 창궐로 산란계가 매몰처분되자 정부는 ‘계란 대란’을 막기 위해 수입을 서둘렀다.비행기로 공수된 미국산 흰색달걀을 구하기 위한 진풍경이 벌어지고,계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사재기 소동이 빚어지자 일부 마트에서는 제한 판매에 나설 정도였다.그러나 ‘살충제 달걀’이 모든 상황을 180도 바꿔 놓았다.식재료에서 자취를 감춘 것.1년도 안 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계란값은 반 토막이 났다.제빵·제과점의 매출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완벽한 음식’으로 찬사를 받던 계란이 하루아침에 식탁에서 사라진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이런 상황에서 식약처는 “하루 2.6개씩 평생 먹어도 괜찮다”고 한다.이런 발표를 믿어야 하는 국민이 서글프다.살충제는 말 그대로 멸(滅)이다.생(生)이 아닌 멸(滅)!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영국의 알버트 하워드 경(Sir Albert G.Howard)은 ‘농업성전(農業聖典,An Agricultural Testament)’이라는 책에서 “이 세상에 안전하고 좋은 화학 농약이란 없다”고 했다.우리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믿으라는 말인가.
우리의 농업현실은 암담하다.농약을 ‘작물보호제’라고 부르고,GMO(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찬사가 잇따른다.농경지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농약을 사용하는 나라,식량수입 1등 국가가 다름 아닌 우리나라다.유기농업은 사라지고 농약에 의지해 작물을 키운다.그러면서 ‘청정 농산물’을 내세운다.‘살충제 계란’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생명과 생태계,먹을거리의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살충제 계란과 농약채소를 마주한 지금,우리는 무엇을 믿고 먹을 것인가.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