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이동의 명절,추석을 앞두고 큰 과제가 안겨져 있다.조상 묘소의 무성한 잡초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벌초다.해를 거듭할수록 벌초 풍경이 완연하게 달라지고 있다.몇 년 전만해도 먼 친척까지 모두 땀을 흘리며 조상묘소를 순례하듯 벌초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이젠 달라졌다.벌초를 하는 어르신들마다 ‘우리 세대가 벌초 마지막 세대가 될 것 같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이 많지 않다.예전에 벌초는 조상에 대한 후손의 도리로 조상의 유지(遺志)를 잘 받들어 가풍(家風)을 이어가고 혈육의 우의를 돈독히 다져 가는 집안 최대 행사였다.산소를 찾아가는 길은 내 키보다 더 큰 숲속을 헤쳐가는 힘든 길이었다.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일가친척친지들이 남긴 추억도 많다.당시엔 위급 상황이었지만-.아저씨가 벌에 쏘여 얼굴이 퉁퉁 부으셨던 기억.땀을 뻘뻘 흘리시며 잡목을 베다가 벌집을 건드린 형님.젊은 열정으로 예초기를 처음 메었다가 칼날에 튕긴 돌멩이에 정강이를 까인 조카,뱀에 놀라 혼비백산한 동생,벌초 끝나고 식사하며 나눈 반주에 취하셨던 친척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또다시 가을을 맞는다.
연세 높으신 분들은 자식들에게 부담되지 않으려고 화장하여 수목장이나 자연장을 유언으로 남기시는 분도 많다.또한 집안 큰 어르신들은 생전에 모든 조상 묘를 밀례(묘지 이장)하여 후손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납골당에 모시는 분들도 많다.올해는 5월 윤달이 끼어 개장, 이장 건수가 더욱 많았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도 자녀에게 부담주기 싫어 노인 스스로 자신의 임종을 대비하는 이른바 ‘슈카쓰(終活)’가 일반화되고 있다. 8년전 신조어로 등장해 붐을 이루더니, 이제는 60대 이상 장년층에겐 통과의례가 되고 있다.‘셀프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다.슈카쓰 설명회에 참석한 노인들은 장례식이나 묘지 비용, 재산 정리 등 임종에 필요한 세밀한 정보를 얻어 가며 사후 가족과 지인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담은 ‘엔딩 노트’ 작성 등 웰다잉(Well-Dying)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올 벌초도 깔끔하게 정리된 산소를 보면서 고향 태백의 높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처럼 내 마음도 두둥실 흘려 보내고 싶다.땀으로 범벅된 일가친척들도 혈육의 정(情)을 듬뿍 느끼며 무너져 가는 효(孝)의 근본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