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뭘 봐도 누굴 만나도 무덤덤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시콜콜 기억하고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다.무심코 지나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관심을 두고 뜻을 매기면 또 그렇게 되는가 보다.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말이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군가의 이런 작은 관심과 눈길이 새로운 존재와 그 의미를 만들어 낸다.요즘사람들은 뭔가에 좇기 듯이 바쁘게 살아간다.주변의 사소한 풍경과 변화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가끔은 정신 줄이라도 놓고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특별한 목적 없이 마을의 골목을 걸어본다거나 돌아올 시간을 정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보는 것도 좋겠다.자동차의 편리함이 빼앗아가 버린 그런 걷는 느낌을 되찾아 보는 것도 좋겠다.

당연히 누려야 할 작은 권리마저 스스로 내 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길을 걷다가도 거리의 풍경이며 사람의 동정이며 이것저것 살피게 된다.차를 타거나 바쁘게 달려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게 된다.그것도 지나치면 탈이지만 천천히 이렇게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는 재미겠다.

이런 작은 관심은 곧 세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그 작은 배려가 거대한 것들 사이의 간극을 거뜬하게 메워준다.사소한 것의 큰 힘이다.그러나 이런 소소한 것의 의미와 재미를 놓치고 사는 것이 요즘사람들이 아닐까한다.그 작은 정서적 본능의 출구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이런 건강한 엿보기의 기제가 막히면서 관음증과 같은 삐뚤어진 훔쳐보기가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예부터 남의 집에 들러 선 문을 함부로 열어젖히거나 방을 휘둘러 살피지 않는다고 한다.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란다.그러나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적 영역에 대한 절제 없는 호기심은 다른 것이다.하루하루 가을 기운이 더해가는 9월이다.어디든 좀 걸으면서 거리의 풍경과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잠시 삶의 기어를 변속해가면서 또 다른 질주를 꿈꿔보자.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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