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풍경 아래 시간마저 쉬어가는 행복의 나라
인구 75만명 80% 이상 불교신자
국가정책 국민 행복지수로 결정
산림 녹지 보호 헌법 내 명시
자연·동물 ·인간의 공존 실천

▲ 부탄 학생들이 전통의상인 고(gho,남)를 입고 뛰어노는 모습.
▲ 부탄 학생들이 전통의상인 고(gho,남)를 입고 뛰어노는 모습.
푸른 습지에 안개가 피어오르고,녹음 울창한 산 중턱에는 하얀 옥양목 저고리를 널어놓은 듯 구름이 느리게 흘러간다.말들이 한가롭게 걷는 풍경 뒤로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어릴 적 외가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하다.처음 부탄에 끌린 것은 ‘부탄에서는 첫 눈 내리는 날이 공휴일이래!’라는 얘길 들었을 때다.첫눈이 오면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낭만을 즐기란다. 헉.이게 가능한가?

부탄은 도대체 어떤 나라야?

방콕에서 파로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부탄에 들어서자 7000미터 대의 히말라야 고봉들이 먼저 반긴다.녹음 빽빽한 봉우리 사이로 비행기가 쑤욱 내려오니 활주로도 길지 않은 작은 파로 공항이 나타난다.부탄의 숙련된 기장만이 안전하게 이륙과 착륙을 할 수 있다더니 과연 그러하다.해발 2195m에 위치한 파로 공항에 내리면 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 5대 왕과 왕비가 큰 포스터 속에서 따뜻한 미소로 여행객을 반겨준다.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들어본 분들은 올여름 부탄에 다녀왔다고 하면 “행복 지수 1위,부탄이요?부럽다”고 한다.그러나,부탄을 모르는 분들은 하나같이 “뭐라고?북한에 다녀왔다고?”화들짝 놀란다.

히말라야 산맥의 동쪽,인구 13억7천만 명의 중국과 12억7천만 명의 인도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부탄.우리나라 면적의 3분의 1, 인구 75만 명의 부탄은 엄연한 독립국이다.은둔의 왕국,마지막 샹그릴라,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왕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입헌군주제를 실시한 나라,남자들이 치마를 입고 다니는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이뤄지는 나라,국가정책을 국민행복지수로 결정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나라 등 부탄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함께 붙는 수식어들이 다양하지만,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이다.

부탄은 불교 국가다.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불교신자이고,어딜 가든 사원이 있다.8세기 인도의 파드마삼바바가 티베트에 밀교를 전하면서 티베트불교의 기초가 만들어졌고,티베트 불교의 주류이던 갤룩파에게 밀린 두룩파 샵드룽이 부탄으로 넘어와 나라를 세우며 자리를 잡았다.부탄불교는 가운데 석가모니,왼쪽에 파드마삼바바,오른쪽에 삽드룽을 둔다.

거리 곳곳에는 불경을 적은 오색 깃발 눙다가 펄럭이고,사람들은 초르텐 주위를 돌며 곳곳에 설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다.마니차 한번 돌리는 것은 불경을 한 권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긴다.옛날,문자를 읽지 못해도 불심이 깊은 이들에게 더욱 마음의 위안이 되었을 터였다.

부탄 여행은 주로 종(Dzong)과 사원을 둘러보는 일정이라 해도 무방하다.부탄에는 20개 주에 종(Dzong)이 있는데,‘종’이란 행정과 종교를 관할하는 성을 일컫는다.처음에는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해 세웠지만 오늘날에는 지역을 관할하는 시청과 사찰이 함께 있는 청사 역할을 한다. 부탄의 20여개 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푸나카종은 꼭 가봐야 할 종이다.1200m분지에 자리한 푸나카에 도착하는 순간 파로공항,수도 팀푸와는 달리 온도가 10도 더 올라간 듯 덥고,햇볕도 제법 뜨겁게 느껴진다.부탄불교의 국사 제켄포는 추운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고,더운 여름에는 팀푸의 종에서 보낸다고 한다.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부탄을 최초로 통일한 샵드룽(나왕 남걀)에 의해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린 두 강이 만나는 삼각지위에 세워졌고, 수도를 팀푸로 옮기기 전까지 약 300년간 부탄의 중심이였다.‘행복이 가득한 궁전’이라는 뜻을 가졌는데,그래서일까 국왕의 결혼식은 이곳에서 행해진다.

그리고,부탄에 왔다면 빼놓지 말고 봐야 할 대표적인 풍경이 있다.아슬아슬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자리한 탁상사원.무려 해발고도 3120미터이다.8세기 부탄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 파드마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와 동굴에서 수행했다는 곳이다.저 숨어있는 절경에 닿을 수 있을까?한라산보다 높은 고도에서 시작해 3120미터까지의 트레킹을 마치고 나면 몸은 고단하지만,안다.고통을 이겨내고 느끼는 희열이 훨씬 크다는 것을.

▲ 부탄 파로시내. 개들도 행복한 나라가 부탄이다.
▲ 부탄 파로시내. 개들도 행복한 나라가 부탄이다.
건물도,자동차도 늘어나 북적이기 시작하는 수도 팀푸에서 9시간 남짓 달려오길 잘했다.부탄 헌법에는 산림의 70% 이상을 녹지로 보호해야 한다는 명문이 있다.부탄 사람들은 히말라야에서 쏟아져 내린 풍부한 빙하물로 전기를 만들어서 인도에 팔고,그 돈으로 공산품을 수입해서 쓴다.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고,미세먼지나 공해 따위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세계적인 멸종 희귀종, 검은 목 두루미 300여 마리가 매년 찾아오는 포브지카 계곡 강테이.티베트 고원의 매서운 추위를 피해 히말라야의 고산을 넘어 이 곳으로 날아오는 ‘검은 목 두루미’를 보호하고,보존하기 위해 강테이 사람들은 송전선을 설치하는 대신 태양열과 소규모 발전기 등으로 자체 전기를 생산하기로 합의했다.그래서,들판에는 그 흔한 전깃줄도 없다.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며 동물과의 공존을 택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결심은 오히려 그에 감동한 여행자들의 발길을 하나 둘 불러 모았다.사람들은 동물과 그리고 잠시지만 그 땅을 사랑하는 여행자들과 행복을 나누고,여행자들은 푸른 습지를 걷고 대관령길 같은 완만한 숲길을 걸으며 오감으로 공존의 힘을 느낀다.

함께 걷던 길벗이 말한다.‘함께 있는 당신이 행복해야 나의 행복도 커집니다.당신이 불행하면 결국 내 행복에도 영향을 받으니,도와야 합니다.모른 척 할 수 없어요.’비로소 걸음을 늦추고, 멈춰 있는 풍경 속으로 한발 들어 갈 수 있었다.바쁘게 끌고 다닌 것은 무엇이었지?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안에서 풍요로운 시간의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 이상은

히말라야 니레카봉 세계최초 등정.터키 최고봉 아라라트 한국최초 등정.여행문화센터 산책 대표.한국여성산악회 이사.KBS 2TV ‘영상앨범 산’출연.KBS1라디오 <이상은의 남다른 여행> 진행 중.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세상의 끝,남미 파타고니아’가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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