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훈   양양주재 취재부국장
▲ 최훈
양양주재 취재부국장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리에 맡기시니’로 시작하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가사 ‘관동별곡’은 태백산맥 동쪽지역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힌다.조선 선조 13년인 1580년 45세의 나이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태백산맥을 넘어 금강산에서 삼척까지 여행하며 느낀 경치와 그에 대한 감회를 관동별곡에 담았다.

지금도 태백산맥을 가운데 놓고 그 동쪽에 있는 속초,양양,강릉 등을 영동(嶺東)으로 부르고,서쪽에 있는 춘천,홍천,원주 등은 영서(嶺西)로 부른다.대관령,한계령,미시령,진부령 등 영동과 영서를 잇던 고갯길은 예전에는 수없이 많은 굽이를 숨차게 오르내려야 했던 험하디 험한 준령이었다.1971년 영동고속도로와 한계령에 이어 1984년 진부령,1990년 미시령,1992년에는 구룡령 등이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영동지역의 교통망이 한층 좋아졌다.하지만 설악산이 가로막고 있는 영북지역은 2006년 미시령터널이 개통돼서야 겨울철 폭설만 내리면 통제됐던 만성적 교통두절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됐다.여기에 지난 6월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90분,춘천에서는 불과 60분이면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게 됐다.송강 정철이 관찰사로 부임했던 시대야 오래 전이라고 하지만 고속도로가 뚫린 동해안은 더이상 말이나 차를 갈아타며 가야 하는 먼 곳도,눈만 내리면 교통이 두절됐던 곳도 아니다.하지만 빠른 길이 생기면서 백두대간 고갯길을 넘으며 ‘관동별곡’속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과거가 됐다.

가을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설악산의 자태는 인제~양양을 잇는 한계령에서 절정을 이룬다.80년대 양희은이 부른 노래 ‘한계령’은 예전에는 ‘오색령’으로 불렸다고 한다.수년전 양양문화원은 “조선 선조 이후 불려온 ‘오색령’이 ‘한계령’으로 왜곡된 것은 일제강점기 창지개명 때문”이라며 지명복원의 필요성을 제기했었다.당시 이런 움직임이 인근 인제군의 반발로 이어지자 양양군은 “지명에 얽매이기보다는 소중한 자연자원을 함께 가꿔 나가겠다”며 지명 개칭작업을 보류해 현재는 일부에서만 ‘오색령’이 사용되고 있다.빼어난 경치로 “오색령이다”,“한계령이다”라며 지명 논란까지 빚은 이 고갯길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통행량이 예전같지 않다.백두대간 고갯길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때마침 오는 11월 양양에서는 제1회 오색·한계령 힐클라임 대회가 열린다.힐클라임이란 가파른 언덕을 자전거로 오르는 대회로 전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백두대간 가운데 대관령,미시령,진부령 등에서는 이미 힐클라임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누구나 오르고 싶어하는 한계령 만큼은 교통통제의 어려움 등으로 그동안 대회를 개최하지 못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요즘 ‘슬로시티(Slow City)’ 운동이 새삼 확산되고 있다.‘느림의 미학’,‘슬로 라이프’,‘슬로 푸드’ 등을 찾는 것도,‘힐클라임’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어쩌면 빠른게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백두대간 고갯길 가운데 한계령이 해발 920m로 가장 높다.올해 처음 열리는 오색·한계령 힐클라임 대회가 예전 굽이굽이 고갯길을 오르면서 맛보던 백두대간의 정취와 풍광을 넘어,‘한계령’ 혹은 ‘오색령’을 그저 단순한 지형으로서의 고갯길이 아닌 지역의 인문학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훈 양양주재 취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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